강원 강릉시 노암동 740-4번지
조선 인조 5년(1627)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현재의 건물은 1927년에 정묘생(丁卯生)의 동갑계에서 최명익 등이 강릉객사의 일부를 옮겨 지은 것이라 전한다. 단층 팔작지붕 정자형의 건물. 정각을 정자형으로 지은 것은 정묘계(丁卯契)를 상징하기 위함이다.
동갑계 20인이 회갑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기는 하나 당시 일제가 강릉공립보통학교를 세우기 위해 강릉객사를 허문 것을 안타깝게 여겨 객사의 재목과 기와를 옮겨와 지은 소중한 건물이다. 이 정자에는 벽이 없고 난간과 마루가 있다. 해서체와 전서체의 해강(海岡) 김규진의 오성정(五星亭) 현판과 석촌거사(石邨居士)의 오성정(五星亭) 현판 등 2개의 현판이 있다. 바로 옆에는 1980년 9월 9일 한종희가 감역한 "五星亭由來(오성정유래)"碑가 세워져 있고 그 이면에는 계원들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오성정의 정자 이름은 "정묘년에 오성관이 취규(聚奎)하여 선정을 폈기 때문에 정통인화(政通人和)하고 천하가 태평하였다"라는 고사에서 따온 것이다.
이곳은 원래 현종 7년(1666) 송광연이 지평(持平)으로 강릉에 와 있을 때 아침저녁으로 올라가 놀던 곳이었고, 구한말 국운이 기울었을 때 의병이 왜병과 싸운 곳이다. 6·25 때 공산군에 항거하며 순국한 한국청년단원 222인의 충혼탑과 수복전야에 산화(散華)한 순국 삼학도(三學徒)의 묘가 있는 유적지이다.
이 정자는 1974년 도비로 보수되었으며 지금은 강릉 시민들의 아침 운동코스와 휴식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조선 인조 5년(1627)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현재의 건물은 1927년에 정묘생(丁卯生)의 동갑계에서 최명익 등이 강릉객사의 일부를 옮겨 지은 것이라 전한다. 단층 팔작지붕 정자형의 건물. 정각을 정자형으로 지은 것은 정묘계(丁卯契)를 상징하기 위함이다.
동갑계 20인이 회갑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기는 하나 당시 일제가 강릉공립보통학교를 세우기 위해 강릉객사를 허문 것을 안타깝게 여겨 객사의 재목과 기와를 옮겨와 지은 소중한 건물이다. 이 정자에는 벽이 없고 난간과 마루가 있다. 해서체와 전서체의 해강(海岡) 김규진의 오성정(五星亭) 현판과 석촌거사(石邨居士)의 오성정(五星亭) 현판 등 2개의 현판이 있다. 바로 옆에는 1980년 9월 9일 한종희가 감역한 "五星亭由來(오성정유래)"碑가 세워져 있고 그 이면에는 계원들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오성정의 정자 이름은 "정묘년에 오성관이 취규(聚奎)하여 선정을 폈기 때문에 정통인화(政通人和)하고 천하가 태평하였다"라는 고사에서 따온 것이다.
이곳은 원래 현종 7년(1666) 송광연이 지평(持平)으로 강릉에 와 있을 때 아침저녁으로 올라가 놀던 곳이었고, 구한말 국운이 기울었을 때 의병이 왜병과 싸운 곳이다. 6·25 때 공산군에 항거하며 순국한 한국청년단원 222인의 충혼탑과 수복전야에 산화(散華)한 순국 삼학도(三學徒)의 묘가 있는 유적지이다.
이 정자는 1974년 도비로 보수되었으며 지금은 강릉 시민들의 아침 운동코스와 휴식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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