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 178
공양왕<恭讓王>은 고려<高麗> 제34대 왕으로 1389년 창왕<昌王>이 폐위<廢位>되자 왕위<王位>에 올랐으나, 1392년 7월 이성계<李成桂>가 왕위<王位>에 추대되자 폐위<廢位>되었고, 조선<朝鮮>이 건국<建國>되자 공양왕<恭讓王>은 원주<原州>로 방치<放置>되었다가, 8월에 간성<杆城>으로 옮기면서 공양군<供讓君>으로 되고, 태조<太祖> 3년(1394) 3월 왕세자<王世子> 석<奭>, 왕자<王子> 우<瑀>와 함께 다시 삼척<三陟>으로 이치<移置>된 후 4월 27일 교살<絞殺>되었다.
현재 공양왕<恭讓王>의 릉<陵>은 삼척시<三陟市> 근덕면<近德面> 궁촌리<宮村里>와 경기도<京畿道> 고양시<高陽市> 원당동<元堂洞>에 각각 남아 있는데, 고양<高陽>의 고려<高麗> 공양왕 고릉<恭讓王 高陵>은 사적<史蹟> 제191호로 지정<指定>('70. 2. 28) 되어 있다.
이처럼 공양왕<恭讓王>의 릉<陵>이 두 곳에 남아있는 것은 공양왕<恭讓王>이 조선건국<朝鮮建國>과 복잡하게 얽혀 있고, 문헌기록<文獻記錄>이 빈약하여 정확한 고증<考證>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고양<高陽>의 릉<陵>이 조선왕조<朝鮮王朝>가 공적<公的>으로 인지<認知>한 릉<陵>인데 비하여, 삼척<三陟>의 릉<陵>은 민간<民間>에 전승<傳承>된 것이라는 차이점<差異點>을 갖고 있으나 두 릉<陵> 모두 조선시대<朝鮮時代>의 문헌<文獻>에 기록<記錄>되어 있다.
삼척<三陟>의 공양왕릉<恭讓王陵>은 총<總> 4기<基>로 무덤중 가장 남쪽에 위치한 것이 공양왕릉<恭讓王陵>이고, 2기<基>는 두 왕자<王子>의 것이며, 나머지 하나는 왕의 시녀<侍女> 또는 왕이 타던 말의 무덤이라 전한다.
공양왕릉<恭讓王陵>의 규모는 직경<直徑> 약 13m이며, 릉<陵> 앞에는 길이 107㎝, 폭<幅> 63㎝인 상석<床石> 1점이 남아 있다. 이 릉<陵>을 공양왕릉<恭讓王陵>으로 명시한 기록<記錄>으로는 현종<顯宗> 3년(1662) 삼척부사 허목<三陟府使 許穆>이 편찬<編纂>한 《척주지<陟州誌>》와 철종<哲宗> 6년(1855) 김구혁<金九赫>이 수서<手書>한 《척주선생안<陟州先生案>》이 있고, 삼척<三陟>의 궁촌<宮村>에서 3년마다 지내는 어용제<漁龍祭>는 제사를 반드시 공양왕릉<恭讓王陵> 앞에서 먼저 지내는 풍습<風習>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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