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
고려시대 초기에 세운 이 비석은 흥녕선원을 개설한 통일신라 시대의 고승인 징효대사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탑비의 형식은 귀부위에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이수를 얹은 신라,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탑비 형식이다. 비신의 앞 뒷면에는 해서체로 비문을 조각하였다. 지대석의 입에는 큼직한 보주를 물고 있으며 목뒤의 지느러미는 얇게 조각하였고 귀갑은 반구형에 가깝고 등전체에 6각의 귀갑문이 있고 그 안에 둥근 자방이 있는 화문을 조각 장식하였다.
비석위에 놓인 이수는 비좌와 같이 밑에는 받침을 두고 복엽앙련을 돌아가면서 양각하였다. 측면에는 네 귀퉁이에 용을 하나씩 4마리의 용이 목을 길게 뽑아 상륜부를 향하고 있으며 정상에는 얕은 지주에 앙련을 놓고 여러 겹의 연봉으로 싸인 보주를 올렸다.
신라의 국사인 징효의 휘는 절중이고 자와 속성은 마멸로 알 수 없으며, 휴암사람이다. 비문에는 대사의 가계에 진전법사를 사사하고 19세에 장곡사에서 구족계를 받아 수행하고 교화한것, 75세에 입좌하여 입멸하였고 그 밖에 효공왕이 징효대사와 보인이라는 탑명을 증시한것 등을 적고 말미에 대사의 공덕을 기리는 명문을 적고 있다. 이 탑비는 효공왕 4년(900)에 입적한 징효대사를 기리는 명문으로 이미 지었던 것을 국가가 바뀌는 어지러움 때문에 그 뒤에 새겨서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 글씨는 신라와 고려초에 유행한 초당의 필법으로 구양순풍으로 보고 있다.
고려시대 초기에 세운 이 비석은 흥녕선원을 개설한 통일신라 시대의 고승인 징효대사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탑비의 형식은 귀부위에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이수를 얹은 신라,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탑비 형식이다. 비신의 앞 뒷면에는 해서체로 비문을 조각하였다. 지대석의 입에는 큼직한 보주를 물고 있으며 목뒤의 지느러미는 얇게 조각하였고 귀갑은 반구형에 가깝고 등전체에 6각의 귀갑문이 있고 그 안에 둥근 자방이 있는 화문을 조각 장식하였다.
비석위에 놓인 이수는 비좌와 같이 밑에는 받침을 두고 복엽앙련을 돌아가면서 양각하였다. 측면에는 네 귀퉁이에 용을 하나씩 4마리의 용이 목을 길게 뽑아 상륜부를 향하고 있으며 정상에는 얕은 지주에 앙련을 놓고 여러 겹의 연봉으로 싸인 보주를 올렸다.
신라의 국사인 징효의 휘는 절중이고 자와 속성은 마멸로 알 수 없으며, 휴암사람이다. 비문에는 대사의 가계에 진전법사를 사사하고 19세에 장곡사에서 구족계를 받아 수행하고 교화한것, 75세에 입좌하여 입멸하였고 그 밖에 효공왕이 징효대사와 보인이라는 탑명을 증시한것 등을 적고 말미에 대사의 공덕을 기리는 명문을 적고 있다. 이 탑비는 효공왕 4년(900)에 입적한 징효대사를 기리는 명문으로 이미 지었던 것을 국가가 바뀌는 어지러움 때문에 그 뒤에 새겨서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 글씨는 신라와 고려초에 유행한 초당의 필법으로 구양순풍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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