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나주시 금계동 13-18
정 수루는 조선시대 나주목 관아(官衙,동헌)의 정문이다. 우복룡 목사가 (1602.10.3∼1604) 건립하였다고 군지에는 기록되어 있으나 조선후기에 편찬된 여지도서에는 민백남 목사가 1753년에 건립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1층의 양측면만 벽체로 구성되어 있고 나머지는 모두 개방되어 있다.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낮은 원형초석(전면열에는 장초석을 놓음)위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2층 바닥에는 장마루를 깔았다. 2층기둥 위로는 주두를 놓고 창방을 걸었으며 그 위로는 주간마다 1구씩의 화반(花盤)을 배치하였다. 공포는 행공첨차를 두어 외목도리의 장여를 받게한 2익공식(翼工式)으로 쇠서에는 연꽃이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가구(架構)는 대량(大樑)을 걸고 그 위로 종량(宗樑)을 얹힌 5(樑)구조이며, 천장은 종량위로만 우물천장을 가설하고 나머지는 연등천장으로 꾸몄다. 양 측면의 중심기둥으로부터 대량위로 걸은 충량의 머리는 용두(龍頭)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좌측용은 여의주가 없고 우측용은 여의주를 물고 있다. 2층 누각에는 대형 북과 정수루(正綏樓)편액 (가로 158㎝, 세로 55㎝)이 걸려 있다. 현재 북은 1986년 11월에 김영호씨가 다시 설치한 것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정수루 아래로 자동차가 통행하였으나 건물의 안전상 우회도로를 내서 통행을 돕고 있다.
정 수루는 조선시대 나주목 관아(官衙,동헌)의 정문이다. 우복룡 목사가 (1602.10.3∼1604) 건립하였다고 군지에는 기록되어 있으나 조선후기에 편찬된 여지도서에는 민백남 목사가 1753년에 건립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1층의 양측면만 벽체로 구성되어 있고 나머지는 모두 개방되어 있다.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낮은 원형초석(전면열에는 장초석을 놓음)위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2층 바닥에는 장마루를 깔았다. 2층기둥 위로는 주두를 놓고 창방을 걸었으며 그 위로는 주간마다 1구씩의 화반(花盤)을 배치하였다. 공포는 행공첨차를 두어 외목도리의 장여를 받게한 2익공식(翼工式)으로 쇠서에는 연꽃이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가구(架構)는 대량(大樑)을 걸고 그 위로 종량(宗樑)을 얹힌 5(樑)구조이며, 천장은 종량위로만 우물천장을 가설하고 나머지는 연등천장으로 꾸몄다. 양 측면의 중심기둥으로부터 대량위로 걸은 충량의 머리는 용두(龍頭)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좌측용은 여의주가 없고 우측용은 여의주를 물고 있다. 2층 누각에는 대형 북과 정수루(正綏樓)편액 (가로 158㎝, 세로 55㎝)이 걸려 있다. 현재 북은 1986년 11월에 김영호씨가 다시 설치한 것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정수루 아래로 자동차가 통행하였으나 건물의 안전상 우회도로를 내서 통행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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