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신수동 서강대학교도서관외 1
월인석보< 月印釋譜 >』는 『월인천강지곡< 月印千江之曲 >』과 『석보상절< 釋譜詳節 >』을 합하여 편찬한 것이다. 그러므로 월인천강지곡이라는 명칭으로 된 것도 있고 또 석보상절이라는 명칭으로 된 것도 있으며 두 가지를 합한 이 월인석보도 있어서 모두 3종으로 인행< 印行 >되었다. 석보< 釋譜 >는 석가불< 釋迦佛 >의 연보< 年譜 >, 곧 그의 일대기< 一代記 >라는 뜻이다. 조선 세종< 世宗 >의 왕비< 王妃 >인 태헌왕후 심씨< 胎憲王后 沈氏 > 가 죽은 뒤에 세종은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아들인 수양대군 유< 首陽大君 유 >(뒤의 세조< 世祖 >)에게 명하여 불서< 佛書 >를 참고하여 우리말로 이 책을 역편< 譯編 >하게 한 것이 곧 『석보상절』이다. 세종은 『석보상절』을 읽고 그 각절< 各節 >에 따라 찬가< 讚歌 >를 지었는데, 이것이 곧 『월인천강지곡』이다. 이 책은 훈민정음 반포 당시에 편찬된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국역 불교성전< 佛敎聖典 >이라 할 수 있다. 『월인석보』의 완질< 完帙 >이 현재 전해지지 않으므로 전부의 권수를 확인할 수 없다. 현재까지 발견된 것으로는 다음과 같다. 1. 월인석보< 月印釋譜 >(보물 제 745호의 1) 권 1∼2 (2권 1책)소유자< 所有者 >: 서강대학교< 西江大學校 >소재지< 所在地 >: 서울 마포구 신수동< 麻浦區 新水洞 > 1 서강대학교 도서관크기: 33. 8 × 22. 8cm시대< 時代 >: 조선< 朝鮮 >(1459)이 책은 그 중에서 첫 권인 권 1과 권 2의 합본인데, 이 책은 세조< 世祖 > 당시의 간본< 刊本 >이다. 이 권 1, 권 2는 1568년에 희방사< 喜方寺 >에서 복각< 覆刻 >한 일이 있는데, 이 책은 그 저본< 底本 >이 된다. 내용은 『월인천강지곡』 기일< 其一 >에서 기이십구< 其二十九 >까지 실려 있고, 책머리에 훈민정음< 訓民正音 >, 다음에 석보상절서< 釋譜詳節序 >·월인석보서< 月印釋譜序 >가 있다. 2. 월인석보< 月印釋譜 >(보물 제 745호의 2) 권 7, 8, 9 ( 2권 2책)소유자: 동국대학교< 東國大學校 >소재지: 서울 중구 필동 동국대학교 도서관크기: 32. 2 × 22. 2cm시대: 조선(1459)(보물 제 745호의 1 참조) 이 책 2권 2책 역시 세조< 世祖 > 당시의 초간본< 初刊本 >이다. 권 7은 첫장에서 제 5장까지가 떨어져 없어졌고, 그 밖에도 부분적으로 떨어져 나간 것을 보사< 補寫 >해 넣은 곳이 있다. 『월인천강지곡』 제 177장에서 제 201장까지의 내용이 들어 있고, 권 8에는 『월인천강지곡』 제 202장에서 제 250장까지의 내용이 들어 있다. 월인석보< 月印釋譜 >(보물 제 745호의 3) 권 9, 10 (2권 2책)소유자: 김민영< 金敏榮 >소재지: 서울 강남구< 江南區 >크기: 30 × 22. 5cm시대: 조선(1459)(보물 제 745호의 1 참조) 이 책도 세조조< 世祖朝 >의 초간본이다. 권 9는 첫장에서 제 3장까지가 떨어져 나갔고, 또 제 35, 36장은 상·중·하 3장씩으로 나뉘어 있다. 이 밖에 부분적으로 훼손된 곳과 보사< 補寫 >된 곳이 있다. 권 10은 첫장에서 제 122장까지로 되어 있으나 문장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몇 장이 떨어져 나갔을 것으로 보인다. 권 9는 『월인천강지곡』 제 251장에서 제 260장까지의 내용이 들어 있고, 권 10은 『월인천강지곡』 제 261장에서 제 271장까지에 해당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4. 월인석보< 月印釋譜 >(보물 제 745호의 4) 권 13, 14 (2권 2책)소유자: 연세대학교< 延世大學校 >소재지: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西大門區 新村洞 > 연세대학교 도서관크기: 32. 8 × 22. 6cm시대: 조선(1459)(보물 제 745호의 1 참조) 이 책 역시 세조 때의 초간본이다. 권 13은 첫장이 없어졌고 이 밖에도 여러 곳이 훼손된 부분이 있으며, 권 14는 제 82장 이하가 떨어져 나갔다. 보존된 상태로 보아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탑 속에 들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권 13은 『월인천강지곡』 제 281장의 하부에서 제 282장까지의 내용이며, 권 14는 제 282장에서 제 293장까지가 들어 있다. 5. 월인석보< 月印釋譜 >(보물 제 745호의 5) 권 17, 18 (2책 1권)소유자: 수타사< 壽陀寺 >소재지: 강원 홍천군 동면 덕치리< 江原 洪川郡 東面 德峙里 >시대: 조선(1459)(보물 제 745호의 1 참조) 이 책도 세조조의 초간본이다. 본시 수타사< 壽陀寺 >의 인왕문< 仁王門 >에 있는 지국천왕상< 持國天王像 >의 배 속에서 꺼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 17은 전부가 완전하며, 권 18은 제 87장 하반< 下半 >부터가 떨어져 없어졌으나 전체의 보존상태는 좋다.
월인석보< 月印釋譜 >』는 『월인천강지곡< 月印千江之曲 >』과 『석보상절< 釋譜詳節 >』을 합하여 편찬한 것이다. 그러므로 월인천강지곡이라는 명칭으로 된 것도 있고 또 석보상절이라는 명칭으로 된 것도 있으며 두 가지를 합한 이 월인석보도 있어서 모두 3종으로 인행< 印行 >되었다. 석보< 釋譜 >는 석가불< 釋迦佛 >의 연보< 年譜 >, 곧 그의 일대기< 一代記 >라는 뜻이다. 조선 세종< 世宗 >의 왕비< 王妃 >인 태헌왕후 심씨< 胎憲王后 沈氏 > 가 죽은 뒤에 세종은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아들인 수양대군 유< 首陽大君 유 >(뒤의 세조< 世祖 >)에게 명하여 불서< 佛書 >를 참고하여 우리말로 이 책을 역편< 譯編 >하게 한 것이 곧 『석보상절』이다. 세종은 『석보상절』을 읽고 그 각절< 各節 >에 따라 찬가< 讚歌 >를 지었는데, 이것이 곧 『월인천강지곡』이다. 이 책은 훈민정음 반포 당시에 편찬된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국역 불교성전< 佛敎聖典 >이라 할 수 있다. 『월인석보』의 완질< 完帙 >이 현재 전해지지 않으므로 전부의 권수를 확인할 수 없다. 현재까지 발견된 것으로는 다음과 같다. 1. 월인석보< 月印釋譜 >(보물 제 745호의 1) 권 1∼2 (2권 1책)소유자< 所有者 >: 서강대학교< 西江大學校 >소재지< 所在地 >: 서울 마포구 신수동< 麻浦區 新水洞 > 1 서강대학교 도서관크기: 33. 8 × 22. 8cm시대< 時代 >: 조선< 朝鮮 >(1459)이 책은 그 중에서 첫 권인 권 1과 권 2의 합본인데, 이 책은 세조< 世祖 > 당시의 간본< 刊本 >이다. 이 권 1, 권 2는 1568년에 희방사< 喜方寺 >에서 복각< 覆刻 >한 일이 있는데, 이 책은 그 저본< 底本 >이 된다. 내용은 『월인천강지곡』 기일< 其一 >에서 기이십구< 其二十九 >까지 실려 있고, 책머리에 훈민정음< 訓民正音 >, 다음에 석보상절서< 釋譜詳節序 >·월인석보서< 月印釋譜序 >가 있다. 2. 월인석보< 月印釋譜 >(보물 제 745호의 2) 권 7, 8, 9 ( 2권 2책)소유자: 동국대학교< 東國大學校 >소재지: 서울 중구 필동 동국대학교 도서관크기: 32. 2 × 22. 2cm시대: 조선(1459)(보물 제 745호의 1 참조) 이 책 2권 2책 역시 세조< 世祖 > 당시의 초간본< 初刊本 >이다. 권 7은 첫장에서 제 5장까지가 떨어져 없어졌고, 그 밖에도 부분적으로 떨어져 나간 것을 보사< 補寫 >해 넣은 곳이 있다. 『월인천강지곡』 제 177장에서 제 201장까지의 내용이 들어 있고, 권 8에는 『월인천강지곡』 제 202장에서 제 250장까지의 내용이 들어 있다. 월인석보< 月印釋譜 >(보물 제 745호의 3) 권 9, 10 (2권 2책)소유자: 김민영< 金敏榮 >소재지: 서울 강남구< 江南區 >크기: 30 × 22. 5cm시대: 조선(1459)(보물 제 745호의 1 참조) 이 책도 세조조< 世祖朝 >의 초간본이다. 권 9는 첫장에서 제 3장까지가 떨어져 나갔고, 또 제 35, 36장은 상·중·하 3장씩으로 나뉘어 있다. 이 밖에 부분적으로 훼손된 곳과 보사< 補寫 >된 곳이 있다. 권 10은 첫장에서 제 122장까지로 되어 있으나 문장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몇 장이 떨어져 나갔을 것으로 보인다. 권 9는 『월인천강지곡』 제 251장에서 제 260장까지의 내용이 들어 있고, 권 10은 『월인천강지곡』 제 261장에서 제 271장까지에 해당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4. 월인석보< 月印釋譜 >(보물 제 745호의 4) 권 13, 14 (2권 2책)소유자: 연세대학교< 延世大學校 >소재지: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西大門區 新村洞 > 연세대학교 도서관크기: 32. 8 × 22. 6cm시대: 조선(1459)(보물 제 745호의 1 참조) 이 책 역시 세조 때의 초간본이다. 권 13은 첫장이 없어졌고 이 밖에도 여러 곳이 훼손된 부분이 있으며, 권 14는 제 82장 이하가 떨어져 나갔다. 보존된 상태로 보아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탑 속에 들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권 13은 『월인천강지곡』 제 281장의 하부에서 제 282장까지의 내용이며, 권 14는 제 282장에서 제 293장까지가 들어 있다. 5. 월인석보< 月印釋譜 >(보물 제 745호의 5) 권 17, 18 (2책 1권)소유자: 수타사< 壽陀寺 >소재지: 강원 홍천군 동면 덕치리< 江原 洪川郡 東面 德峙里 >시대: 조선(1459)(보물 제 745호의 1 참조) 이 책도 세조조의 초간본이다. 본시 수타사< 壽陀寺 >의 인왕문< 仁王門 >에 있는 지국천왕상< 持國天王像 >의 배 속에서 꺼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 17은 전부가 완전하며, 권 18은 제 87장 하반< 下半 >부터가 떨어져 없어졌으나 전체의 보존상태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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