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 공릉동 육군사관학교박물관 103
이 문서<文書>는 영락<永樂> 4년<年>(1406) 윤<閏> 7월<月> 13일<日> 국왕이 조흡<曺恰>을 가선대부<嘉善大夫>좌군도총제부동지총제<左軍都摠制府同知摠制>로 임명하는 사령왕지<辭令王旨>인데 총 7행<行>에 걸쳐 초서체<草書體>로 종서<縱書>하였으며 년월<年月> 위에는 "조선국왕지인<朝鮮國王之印>"이란 새보<璽寶>가 찍혀 있다. 조흡(?~1429)은 본관<本貫>은 창영<昌寧>으로 고려말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내고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해진 조민수<曺敏修>(?~1390)의 손자로 알려져 있으며, 정종·태종·세종때에 활양한 무신<武臣>이다. 사패왕지<賜牌王旨>(보물 제 899호), 사령왕지<辭令王旨>(보물 제 897,898호) 등 3건이 이미 1986년에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번 왕지의 출현으로 조흡이 좌군총제<左軍摠制>까지 지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왕지는 세종말기부터 교지로 바뀌고 여기에 찍히는 직인<職印>도 "조선국왕지인<朝鮮國王之印>"에서 "시명지보<施命之寶>"로 바뀌는데 이 왕지는 조선초기 인사행정제도 및 직제를 살피는 데 귀중한 자료임은 물론 새보사용<璽寶使用>의 변천과정과 조흡의 이력을 알려주는 전기사료로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있다.
이 문서<文書>는 영락<永樂> 4년<年>(1406) 윤<閏> 7월<月> 13일<日> 국왕이 조흡<曺恰>을 가선대부<嘉善大夫>좌군도총제부동지총제<左軍都摠制府同知摠制>로 임명하는 사령왕지<辭令王旨>인데 총 7행<行>에 걸쳐 초서체<草書體>로 종서<縱書>하였으며 년월<年月> 위에는 "조선국왕지인<朝鮮國王之印>"이란 새보<璽寶>가 찍혀 있다. 조흡(?~1429)은 본관<本貫>은 창영<昌寧>으로 고려말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내고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해진 조민수<曺敏修>(?~1390)의 손자로 알려져 있으며, 정종·태종·세종때에 활양한 무신<武臣>이다. 사패왕지<賜牌王旨>(보물 제 899호), 사령왕지<辭令王旨>(보물 제 897,898호) 등 3건이 이미 1986년에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번 왕지의 출현으로 조흡이 좌군총제<左軍摠制>까지 지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왕지는 세종말기부터 교지로 바뀌고 여기에 찍히는 직인<職印>도 "조선국왕지인<朝鮮國王之印>"에서 "시명지보<施命之寶>"로 바뀌는데 이 왕지는 조선초기 인사행정제도 및 직제를 살피는 데 귀중한 자료임은 물론 새보사용<璽寶使用>의 변천과정과 조흡의 이력을 알려주는 전기사료로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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