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 공릉동 313-19
태릉<泰陵>은 제11대<第11代> 중종대왕<中宗大王> 제2계비<第2繼妃> 문정왕후 윤씨<文政王后 尹氏>의 릉<陵>이다. 문정왕후 윤씨<文政王后 尹氏>는 본관<本貫>이 파평<坡平>으로 영돈녕부사<領敦寧府使> 파산부원군<坡山府院君> 윤지임<尹之任>의 여<女>로서 연산군<燕山君> 7년(1501년) 10월 22일 탄생<誕生>하였으며 중종<中宗>의 제1계비<第1繼妃> 장경왕후 윤씨<章敬王后 尹氏>가 중종<中宗> 10년(1515년) 3월 인종<仁宗>을 낳고 산후병<産後病>으로 7일만에 승하<昇遐>하자 2년 후인 중종<中宗> 12년(1517년) 7월 19일 왕비<王妃>로 책봉<冊封>되었으니 춘추<春秋> 17세였다. 문정왕후<文政王后>는 소생<所生> 경원대군<慶原大君>이 인종<仁宗>의 대통<大統>을 이어 왕위<王位>에 나가자 8년간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였으며, 명종 즉위년<明宗 卽位年>(1545년) 인종<仁宗>의 외척<外戚>인 윤임 일파<尹任 一派> 대윤세력<大尹勢力>을 축출<逐出>하고 왕후<王后>의 친정<親庭>인 윤원형등<尹元衡> 등의 소윤 일파<小尹 一派>가 득세<得勢>하는 을사화옥<乙巳禍獄>이 있었다. 봉은사 주지승<奉恩寺 住持僧> 보우<普雨>와 상론<相論>하여 성종<成宗>의 선릉 동강<宣陵 東岡>에 길지<吉地>가 있다하여 경기도 고양군<京畿道 高陽郡>의 중종 계비<中宗 繼妃> 장경왕후<章敬王后>와 동원<同原>의 정릉<靖陵>을 천릉<遷陵>하여 후일 왕후<後日 王后>의 릉<陵>을 함께 하고자 명종<明宗> 17년(1562년) 9월 천봉<遷奉>하였던 것이나 하절<夏節> 홍수시<洪水時>에는 능소<陵所>까지 침수<浸水>되어 보토<補土>에 거액<巨額>을 허비<虛費>하였을 뿐 왕후릉<王后陵>은 양주 노원<楊州 蘆原>에 설릉<設陵>케 되었다. 왕후<王后>는 불심<佛心>이 깊어 유생<儒生>들의 반대<反對>를 무릅쓰고 승과<僧科>를 두었고 선·교 양종<禪 ·敎 兩宗>을 부활<復活>시키는 등 불교진흥<佛敎振興>에 진력<盡力>하였다.
문정왕후<文定王后> 승하<昇遐> 후 명종<明宗>은 척신정치<戚臣政治>의 폐해<幣害>를 척결<剔抉>하고자 인재<人材>를 균용<均用>하고 선정<善政>을 베풀고자 하였으나 뜻을 펴지 못한 채 명종<明宗> 22년(1567년) 6월 28일 경복궁 양심당<景福宮 養心堂>에서 승하<昇遐>하니 재위<在位> 22년이었고 춘추<春秋> 34세였다. 원자 순회세자<元子 順懷世子>가 13세에 요절<夭折>하여 사왕<嗣王>이 없어 중종<中宗>의 제7자<第7子>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제3자<第3子> 균<鈞>이 승습<承襲>하니 후일<後日>의 선조대왕<宣祖大王>이다. 선조 즉위년<宣祖 卽位年>(1567년) 7월 7일 묘호<廟號>를 명종<明宗>이라 하였고 이 해 9월 22일 양주 노원면 대방동 금산<楊州 蘆原面 大邦洞 金山>의 해좌사향<亥坐巳向>(북북서<北北西>에서 남남동향<南南東向>) 언덕에 예장<禮葬>하고 능호<陵號>를 강릉<康陵>이라 하였다.
태릉<泰陵>은 제11대<第11代> 중종대왕<中宗大王> 제2계비<第2繼妃> 문정왕후 윤씨<文政王后 尹氏>의 릉<陵>이다. 문정왕후 윤씨<文政王后 尹氏>는 본관<本貫>이 파평<坡平>으로 영돈녕부사<領敦寧府使> 파산부원군<坡山府院君> 윤지임<尹之任>의 여<女>로서 연산군<燕山君> 7년(1501년) 10월 22일 탄생<誕生>하였으며 중종<中宗>의 제1계비<第1繼妃> 장경왕후 윤씨<章敬王后 尹氏>가 중종<中宗> 10년(1515년) 3월 인종<仁宗>을 낳고 산후병<産後病>으로 7일만에 승하<昇遐>하자 2년 후인 중종<中宗> 12년(1517년) 7월 19일 왕비<王妃>로 책봉<冊封>되었으니 춘추<春秋> 17세였다. 문정왕후<文政王后>는 소생<所生> 경원대군<慶原大君>이 인종<仁宗>의 대통<大統>을 이어 왕위<王位>에 나가자 8년간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였으며, 명종 즉위년<明宗 卽位年>(1545년) 인종<仁宗>의 외척<外戚>인 윤임 일파<尹任 一派> 대윤세력<大尹勢力>을 축출<逐出>하고 왕후<王后>의 친정<親庭>인 윤원형등<尹元衡> 등의 소윤 일파<小尹 一派>가 득세<得勢>하는 을사화옥<乙巳禍獄>이 있었다. 봉은사 주지승<奉恩寺 住持僧> 보우<普雨>와 상론<相論>하여 성종<成宗>의 선릉 동강<宣陵 東岡>에 길지<吉地>가 있다하여 경기도 고양군<京畿道 高陽郡>의 중종 계비<中宗 繼妃> 장경왕후<章敬王后>와 동원<同原>의 정릉<靖陵>을 천릉<遷陵>하여 후일 왕후<後日 王后>의 릉<陵>을 함께 하고자 명종<明宗> 17년(1562년) 9월 천봉<遷奉>하였던 것이나 하절<夏節> 홍수시<洪水時>에는 능소<陵所>까지 침수<浸水>되어 보토<補土>에 거액<巨額>을 허비<虛費>하였을 뿐 왕후릉<王后陵>은 양주 노원<楊州 蘆原>에 설릉<設陵>케 되었다. 왕후<王后>는 불심<佛心>이 깊어 유생<儒生>들의 반대<反對>를 무릅쓰고 승과<僧科>를 두었고 선·교 양종<禪 ·敎 兩宗>을 부활<復活>시키는 등 불교진흥<佛敎振興>에 진력<盡力>하였다.
문정왕후<文定王后> 승하<昇遐> 후 명종<明宗>은 척신정치<戚臣政治>의 폐해<幣害>를 척결<剔抉>하고자 인재<人材>를 균용<均用>하고 선정<善政>을 베풀고자 하였으나 뜻을 펴지 못한 채 명종<明宗> 22년(1567년) 6월 28일 경복궁 양심당<景福宮 養心堂>에서 승하<昇遐>하니 재위<在位> 22년이었고 춘추<春秋> 34세였다. 원자 순회세자<元子 順懷世子>가 13세에 요절<夭折>하여 사왕<嗣王>이 없어 중종<中宗>의 제7자<第7子>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제3자<第3子> 균<鈞>이 승습<承襲>하니 후일<後日>의 선조대왕<宣祖大王>이다. 선조 즉위년<宣祖 卽位年>(1567년) 7월 7일 묘호<廟號>를 명종<明宗>이라 하였고 이 해 9월 22일 양주 노원면 대방동 금산<楊州 蘆原面 大邦洞 金山>의 해좌사향<亥坐巳向>(북북서<北北西>에서 남남동향<南南東向>) 언덕에 예장<禮葬>하고 능호<陵號>를 강릉<康陵>이라 하였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