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숙종대의 마상무술을 중심으로 한 궁술대회와 영조대의 물놀이,판소리,백일장등을 포함한 민속·무예놀이를 총칭하여 "대사습놀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대사습"이란 매년 동짓날에 부영과 감영으로 나뉘어 치뤄지던 대사습놀이가 끝나고 다음 해의 놀이가 시작하기까지 출연할 장인·무예인들이 혼자의 힘으로 열심히 노력한 결과, 기량과 기예가 크게 터득되고 발전하여 그 사람들이 다시 모여 경연대회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연유로 전주 대사습놀이는 영조8년 지방재인청(신청)과 가무사습청의 설치에 따라 전주에다 4개의 군자정을 신축하고, 전주에서 최초로 대사습놀이가 베풀어진 뒤 연례행사로 실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일시 중단되고, 1975년 다시 시작되어 금년까지 25번째 소리꾼의 등용문으로 통하고 있다.
현재는 판소리명창, 농악, 기악, 궁도, 시조, 가야금병창, 민요, 무용, 판소리 일반부 9개 종목으로 다양화 되었다.
전주 대사습 놀이의 유래는 본부광대, 영문광대 즉 전주시 광대와 전라 감영 관대가 통인의 주관으로 전국 (특히 전남)의 광대가 모이고 (운집하여) 서로 경쟁적으로 기예를 발휘하여 동짓날 밤이 샌지도 모를 정도로 흥분과 열기의 도가니였던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대사습 놀이로 유명해졌던 사람들을 살펴보면
본부광대 - 장자백, 정창업, 김세종, 송만갑, 염덕준
감영관대 - 이날치, 백만순, 주덕기, 장수철
소속불명 - 유공열, 배희조, 김창환, 김정근
등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인기(명성)를 올리면 소리를 좋아한 양반들이 이들을 앞다투어 초대공연을 했고, 이들은 큰 후대를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제도화되지 않은 민속의 등용문이 되었던 셈이었다.
지금은 5월 단오일이면 대사습 행사를 성황리에 하게 되었는데, 그 역사성(원형)도 성찰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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