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고양시 일산구 주엽2동 문촌마을 5 라이프주택 202동 901호
이용서< 李瑢書 > 「소원화개첩< 小苑花開帖 >」은 안평대군< 安平大君 > 이용< 李瑢 >이 쓴「소원화개난만통 < 小苑花開爛만通 >」이하< 以下 > 56자다. 말미< 末尾 >에 낙관< 落款 >과 도서< 圖書 >가 있어 이용< 李瑢 >의 글씨임이 확인< 確認 >된다. 이용< 李瑢 >(1418~1453)은 조선< 朝鮮 > 세종< 世宗 >의 제3왕자< 第三王子 >로 안평대군< 安平大君 >에 봉해져 세상< 世上 >에서 안평대군< 安平大君 >으로 통칭< 通稱 >된다. 그는 왕자< 王子 >이었기 때문에 정권< 政權 >다툼에 말려들어 36세< 歲 >의 젊은 나이로 수양대군< 首陽大君 >(뒤의 세조< 世祖 >)에게 살해< 殺害 >되었다. 시문< 詩文 >, 서< 書 >, 화< 畵 >에 능< 能 >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나 특히 글씨를 잘 썼다. 원< 元 >의 조맹부< 趙孟부 >의 서법< 書法 >을 따랐으면서도 능히 스스로 개성< 個性 >을 살려 웅혼한 기품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그가 정변< 政變 >으로 희생< 犧牲 >된 이후< 以後 > 그의 글씨는 모조리 없어졌고 심지어는 그가 쓴 금속활자< 金屬活字 >인 경오자< 庚午字 >조차도 부수어 없애버렸다. 그리하여 비갈< 碑碣 > 법첩< 法帖 >에 새겨서 전하는 것 이외< 以外 >에 전적< 典籍 >은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현존< 現存 >한 것 중 확실< 確實 >한 것은 일본< 日本 > 천리대학< 天理大學 >에 간직된 「몽유도원도발< 夢遊桃源圖跋 >」이 있을 뿐이고 국내< 國內 >에서는 아직 확실< 確實 >한 것이 발견< 發見 >되지 않았다. 이 서첩< 書帖 >은 모고가< 某古家 >에 전해오던 고서첩중< 古書帖中 >에서 발견< 發見 >된 것으로 서풍< 書風 >으로 보아도 이용< 李瑢 >의 전형< 典型 >이 분명히 드러나며 또 낙관< 落款 >과 도장< 圖章 >이 구비하여 진적< 眞蹟 >임을 감정하기에 결함< 缺陷 >이 없다. 비록 소품< 小品 >이기는 하나 지금까지에는 유일< 唯一 >한 진품< 珍品 >이라 할 수 있다. 이 서첩< 書帖 >에 필자< 筆者 >는 한문< 漢文 >으로 제발< 題跋 >을 쓴 바가 있다.
이용서< 李瑢書 > 「소원화개첩< 小苑花開帖 >」은 안평대군< 安平大君 > 이용< 李瑢 >이 쓴「소원화개난만통 < 小苑花開爛만通 >」이하< 以下 > 56자다. 말미< 末尾 >에 낙관< 落款 >과 도서< 圖書 >가 있어 이용< 李瑢 >의 글씨임이 확인< 確認 >된다. 이용< 李瑢 >(1418~1453)은 조선< 朝鮮 > 세종< 世宗 >의 제3왕자< 第三王子 >로 안평대군< 安平大君 >에 봉해져 세상< 世上 >에서 안평대군< 安平大君 >으로 통칭< 通稱 >된다. 그는 왕자< 王子 >이었기 때문에 정권< 政權 >다툼에 말려들어 36세< 歲 >의 젊은 나이로 수양대군< 首陽大君 >(뒤의 세조< 世祖 >)에게 살해< 殺害 >되었다. 시문< 詩文 >, 서< 書 >, 화< 畵 >에 능< 能 >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나 특히 글씨를 잘 썼다. 원< 元 >의 조맹부< 趙孟부 >의 서법< 書法 >을 따랐으면서도 능히 스스로 개성< 個性 >을 살려 웅혼한 기품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그가 정변< 政變 >으로 희생< 犧牲 >된 이후< 以後 > 그의 글씨는 모조리 없어졌고 심지어는 그가 쓴 금속활자< 金屬活字 >인 경오자< 庚午字 >조차도 부수어 없애버렸다. 그리하여 비갈< 碑碣 > 법첩< 法帖 >에 새겨서 전하는 것 이외< 以外 >에 전적< 典籍 >은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현존< 現存 >한 것 중 확실< 確實 >한 것은 일본< 日本 > 천리대학< 天理大學 >에 간직된 「몽유도원도발< 夢遊桃源圖跋 >」이 있을 뿐이고 국내< 國內 >에서는 아직 확실< 確實 >한 것이 발견< 發見 >되지 않았다. 이 서첩< 書帖 >은 모고가< 某古家 >에 전해오던 고서첩중< 古書帖中 >에서 발견< 發見 >된 것으로 서풍< 書風 >으로 보아도 이용< 李瑢 >의 전형< 典型 >이 분명히 드러나며 또 낙관< 落款 >과 도장< 圖章 >이 구비하여 진적< 眞蹟 >임을 감정하기에 결함< 缺陷 >이 없다. 비록 소품< 小品 >이기는 하나 지금까지에는 유일< 唯一 >한 진품< 珍品 >이라 할 수 있다. 이 서첩< 書帖 >에 필자< 筆者 >는 한문< 漢文 >으로 제발< 題跋 >을 쓴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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