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 산4
백제 말기의 명장 계백장군<階伯將軍>의 유허지<遺墟地>로 전해지는 곳이다. 계백(?∼660)장군은 성충<成忠>, 흥수<興首>와 더불어 백제 3충신<三忠臣>으로 꼽힌다. 의자왕<義慈王> 20년(660년) 나당 연합군<羅唐 聯合軍>이 백제의 요충지인 탄현과 백강으로 진격해오자 장군은 5천여명의 결사대<決死隊>를 이끌고 황산<黃山>벌에서 김유신 장군의 5만대군과 싸웠다. 죽음을 각오한 결사대의 용맹스러운 활약으로 4번의 싸움에서 이겼으나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마침내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전쟁이 끝안후 신라 김유신 장군은 계백장군의 시체를 찾도록 하였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이는 그 부근의 백제민들이 몰래 시신을 걷어들여 급히 묘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어 찾지 못하였다가 1966년 찾게 되었지만 발견 당시에는 봉분이 반이상이 붕괴되어 내광이 노출되었으며 광벽까지 일부 파손된 채 방치되어 있던 것을 부적면민<夫赤面民>들에 의해 계백장군묘을 복묘<復墓>, 지석을 안치한 후 내광회벽을 완봉한 후 봉분둘레 47.6m, 직경 15.15m, 봉분높이 6.5m로 복묘하였고 1976년 5월 19일 성분<成墳>하였다. 현재는 논산인들의 숙원사업인 계백장군 묘역에 대한 성역화<聖域>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백제 말기의 명장 계백장군<階伯將軍>의 유허지<遺墟地>로 전해지는 곳이다. 계백(?∼660)장군은 성충<成忠>, 흥수<興首>와 더불어 백제 3충신<三忠臣>으로 꼽힌다. 의자왕<義慈王> 20년(660년) 나당 연합군<羅唐 聯合軍>이 백제의 요충지인 탄현과 백강으로 진격해오자 장군은 5천여명의 결사대<決死隊>를 이끌고 황산<黃山>벌에서 김유신 장군의 5만대군과 싸웠다. 죽음을 각오한 결사대의 용맹스러운 활약으로 4번의 싸움에서 이겼으나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마침내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전쟁이 끝안후 신라 김유신 장군은 계백장군의 시체를 찾도록 하였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이는 그 부근의 백제민들이 몰래 시신을 걷어들여 급히 묘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어 찾지 못하였다가 1966년 찾게 되었지만 발견 당시에는 봉분이 반이상이 붕괴되어 내광이 노출되었으며 광벽까지 일부 파손된 채 방치되어 있던 것을 부적면민<夫赤面民>들에 의해 계백장군묘을 복묘<復墓>, 지석을 안치한 후 내광회벽을 완봉한 후 봉분둘레 47.6m, 직경 15.15m, 봉분높이 6.5m로 복묘하였고 1976년 5월 19일 성분<成墳>하였다. 현재는 논산인들의 숙원사업인 계백장군 묘역에 대한 성역화<聖域>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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