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논산시 연산면 표정리 산20
이 산성은 흙과 돌로 자연< 自然 >의 지세< 地勢 >를 이용하여 험준< 險峻 >한 상봉< 上峰 >에 만들었다. 웅진시대< 熊津時代 >로부터 사비시대< 泗 時代 >에 걸쳐 축성된 백제< 百濟 > 때의 것으로 여겨지며 자연석을 이용하여 작은모 쌓기를 한 것이 특징이다. 둘레는 870m이고 성안에서 '황산인방< 黃山寅方 >' '대안< 大安 >'이 새겨진 기와가 출토된 바 있으며 백제 특유의 삼족토기< 三足土器 >를 비롯한 많은 유물이 발견된다. 주변의 고분군< 古墳群 >과 함께 백제< 百濟 > 말< 末 >의 황산벌 싸움과도 관계 깊었던 산성< 山城 >으로 보여지고, 조선< 朝鮮 > 초기< 初期 >까지도 군창< 軍倉 >을 두어 유지했던 기록이 있다. 북서쪽의 노성산성< 魯城山城 >과 일직선상에 위치하여 신라군< 新羅群 >을 방위하던 구실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 推定 >된다.
이 산성은 흙과 돌로 자연< 自然 >의 지세< 地勢 >를 이용하여 험준< 險峻 >한 상봉< 上峰 >에 만들었다. 웅진시대< 熊津時代 >로부터 사비시대< 泗 時代 >에 걸쳐 축성된 백제< 百濟 > 때의 것으로 여겨지며 자연석을 이용하여 작은모 쌓기를 한 것이 특징이다. 둘레는 870m이고 성안에서 '황산인방< 黃山寅方 >' '대안< 大安 >'이 새겨진 기와가 출토된 바 있으며 백제 특유의 삼족토기< 三足土器 >를 비롯한 많은 유물이 발견된다. 주변의 고분군< 古墳群 >과 함께 백제< 百濟 > 말< 末 >의 황산벌 싸움과도 관계 깊었던 산성< 山城 >으로 보여지고, 조선< 朝鮮 > 초기< 初期 >까지도 군창< 軍倉 >을 두어 유지했던 기록이 있다. 북서쪽의 노성산성< 魯城山城 >과 일직선상에 위치하여 신라군< 新羅群 >을 방위하던 구실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 推定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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