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논산시 부적면 덕평리 산4
이 불상은 현재 무릎 이하 부분이 흙에 묻혀 있어 원래의 크기는 분명히 알 수 없지만 남아 있는 불신< 佛身 >만도 1.95m나 되는 거상< 巨像 >이다. 머리부분은 다소 마멸되었으나 육계< 肉계 >가 큼직하며 얼굴이 풍만하고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하면서 복스러운 편이다. 두텁고 명쾌한 통견법의< 通肩法衣 >의 옷주름이 가슴 아래로 넓게 U자형을 이루며 흘러내리다가 다리 윗부분에서 두 가닥으로 나누어지는데 다소 도식적인 면도 보인다. 왼손은 팔꿈치 이하 부분이 절단되어 잘 알 수 없으나, 손의 위치와 함께 가슴 안쪽으로 들려올려 여원인< 與願印 >을 짓고 있는 오른손의 모양으로 보아, 수인은 시무외< 施無畏 >·여원인< 與願印 >으로 생각된다. 어쨌든 얼굴과 머리 그리고 신체와 옷주름의 특징이 남원< 南原 > 만복사지< 萬福寺址 > 석불입상< 石佛立像 >의 양식과 비슷한 점이 고려< 高麗 >의 우수한 불상으로 평가된다. 이 불상이 봉안되어 있던 운제사< 雲際寺 >는 개태사< 開泰寺 > 다음가는 대사찰이었으며, 이 불상은 고려시대< 高麗時代 > 무신< 武臣 >이었던 정공권< 鄭公權 >(?∼1382)의 시< 詩 >에 소개될 만큼 유명한 불상이었다.
이 불상은 현재 무릎 이하 부분이 흙에 묻혀 있어 원래의 크기는 분명히 알 수 없지만 남아 있는 불신< 佛身 >만도 1.95m나 되는 거상< 巨像 >이다. 머리부분은 다소 마멸되었으나 육계< 肉계 >가 큼직하며 얼굴이 풍만하고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하면서 복스러운 편이다. 두텁고 명쾌한 통견법의< 通肩法衣 >의 옷주름이 가슴 아래로 넓게 U자형을 이루며 흘러내리다가 다리 윗부분에서 두 가닥으로 나누어지는데 다소 도식적인 면도 보인다. 왼손은 팔꿈치 이하 부분이 절단되어 잘 알 수 없으나, 손의 위치와 함께 가슴 안쪽으로 들려올려 여원인< 與願印 >을 짓고 있는 오른손의 모양으로 보아, 수인은 시무외< 施無畏 >·여원인< 與願印 >으로 생각된다. 어쨌든 얼굴과 머리 그리고 신체와 옷주름의 특징이 남원< 南原 > 만복사지< 萬福寺址 > 석불입상< 石佛立像 >의 양식과 비슷한 점이 고려< 高麗 >의 우수한 불상으로 평가된다. 이 불상이 봉안되어 있던 운제사< 雲際寺 >는 개태사< 開泰寺 > 다음가는 대사찰이었으며, 이 불상은 고려시대< 高麗時代 > 무신< 武臣 >이었던 정공권< 鄭公權 >(?∼1382)의 시< 詩 >에 소개될 만큼 유명한 불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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