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29-1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토벌한 것을 기념해 936년 창건한 개태사의 절터. 왕건은 후백제 견훤과의 전투 중 사랑하던 아장 신숭겸이 자신을 구출하고 전사하자 '삼국을 통일한 뒤 나라를 여는 기틀을 마련했다'라는 의미로 이 곳에 절을 세웠다고 한다. 그 절이 바로 개태사이다. 국립 개국사찰이었던 것이다.
왕건은 개태사를 고려의 원당(願堂)으로 삼아 부처의 위력으로 나라를 지켜 달라는 기원문을 손수 지어 바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개태사는 조선시대 폐사되었다가 1930년 김광영이 5층 석탑과 매몰된 석불을 찾아 옛 개태사 인근에 지금의 개태사를 세웠다.
화강석인 것으로 짐작되는 개태사지 석불 입상(보물 제219호)은 현 개태사 안에 봉안되어 있다. 연산읍 부근에 있던 철확(쇠로 만든 발 없는 솥)도 1981년 개태사로 옮겨져 보관되고 있다.
개태사 절터에서 출토된 청동으로 만든 반자(飯字)는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사진은 현 개태사)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토벌한 것을 기념해 936년 창건한 개태사의 절터. 왕건은 후백제 견훤과의 전투 중 사랑하던 아장 신숭겸이 자신을 구출하고 전사하자 '삼국을 통일한 뒤 나라를 여는 기틀을 마련했다'라는 의미로 이 곳에 절을 세웠다고 한다. 그 절이 바로 개태사이다. 국립 개국사찰이었던 것이다.
왕건은 개태사를 고려의 원당(願堂)으로 삼아 부처의 위력으로 나라를 지켜 달라는 기원문을 손수 지어 바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개태사는 조선시대 폐사되었다가 1930년 김광영이 5층 석탑과 매몰된 석불을 찾아 옛 개태사 인근에 지금의 개태사를 세웠다.
화강석인 것으로 짐작되는 개태사지 석불 입상(보물 제219호)은 현 개태사 안에 봉안되어 있다. 연산읍 부근에 있던 철확(쇠로 만든 발 없는 솥)도 1981년 개태사로 옮겨져 보관되고 있다.
개태사 절터에서 출토된 청동으로 만든 반자(飯字)는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사진은 현 개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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