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읍 향천리의 관모산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백제시대 고찰.
백제 의자왕 16년(656년)에 의각스님이 세웠다고 하는데 창건 설화가 전해져온다.
의각스님이 당나라에서 3,053개의 불상을 조성하여 가지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불상을 안치할 곳을 걱정하고 있는데 한 쌍의 황금 빛 까마귀가 배주위를 돌다가 사라졌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의각스님이 배를 몰아 까마귀를 따라가 보니 까마귀가 지금의 향천사 위치에 내려 앉았다. 까마귀들은 나무그늘 아래서 낙엽을 헤치고 물을 찍어 먹고 있는 것이었다. 그곳은 낙엽에 뒤덮인 약수샘이었다.
이에 의각스님은 그 까마귀가 부처님 모실곳을 인도 하였음을 깨닫고 이곳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이와함께 의각스님이 3,053위의 불상을 옮겨 모실 때 흰소가 나타나 큰 수레를 끌고와서 날라 주고는 절 동구밖에 나가서 고함을 지르며 해탈을 했다고 전한다.
이 절 안에는 충청남도 지정문화재 174호인 9층석탑이 남아있다. 높이가 4m에 약간 못미치는 이 탑은 2대 주지스님이였던 도장스님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임진왜란 때 심하게 파손돼 4층부터는 탑신이 손실되고 옥개석만 남아있다.
천불전에서 서쪽으로 70여미터 떨어진 곳에 지방문화재 179호인 부도2기가 위치하고 있다.
절 창건자인 의각스님의 것(왼쪽)과 임진왜란 때 승군을 조직하여 금산전투에 참가 하였던 멸운스님의 것이다. 서선당 왼쪽의 영산교를 지나면 천불선원이 나온다. 천불선원의 천불전에는 당시 3,053개의 불상중 1,516불만 봉안돼 있다.
백제 의자왕 16년(656년)에 의각스님이 세웠다고 하는데 창건 설화가 전해져온다.
의각스님이 당나라에서 3,053개의 불상을 조성하여 가지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불상을 안치할 곳을 걱정하고 있는데 한 쌍의 황금 빛 까마귀가 배주위를 돌다가 사라졌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의각스님이 배를 몰아 까마귀를 따라가 보니 까마귀가 지금의 향천사 위치에 내려 앉았다. 까마귀들은 나무그늘 아래서 낙엽을 헤치고 물을 찍어 먹고 있는 것이었다. 그곳은 낙엽에 뒤덮인 약수샘이었다.
이에 의각스님은 그 까마귀가 부처님 모실곳을 인도 하였음을 깨닫고 이곳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이와함께 의각스님이 3,053위의 불상을 옮겨 모실 때 흰소가 나타나 큰 수레를 끌고와서 날라 주고는 절 동구밖에 나가서 고함을 지르며 해탈을 했다고 전한다.
이 절 안에는 충청남도 지정문화재 174호인 9층석탑이 남아있다. 높이가 4m에 약간 못미치는 이 탑은 2대 주지스님이였던 도장스님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임진왜란 때 심하게 파손돼 4층부터는 탑신이 손실되고 옥개석만 남아있다.
천불전에서 서쪽으로 70여미터 떨어진 곳에 지방문화재 179호인 부도2기가 위치하고 있다.
절 창건자인 의각스님의 것(왼쪽)과 임진왜란 때 승군을 조직하여 금산전투에 참가 하였던 멸운스님의 것이다. 서선당 왼쪽의 영산교를 지나면 천불선원이 나온다. 천불선원의 천불전에는 당시 3,053개의 불상중 1,516불만 봉안돼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