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 산 33-1
선조<宣祖>12년에 태어난 선생의 자는 비경<飛卿> 호는 포저<浦渚>이다. 선조 25년에 문과에 급제한후 호당<湖堂>에 있었고 1609년(광해군 1년)에 병조좌당을 거쳐 수찬<修撰>에 재직중 정인홍, 이황 등이 문묘배향<文廟配享>을 반대하자 탄액하다가 고산도찰방으로 좌천되었다가 이듬해 다시 웅천 현감이 되었다. 1623년 인조왕이 즉위하자 맨먼저 기용되어 이조좌랑이 되었다. 이때 김육이 제창한 대동법<大同法>의 시행을 적극 주장 효종이 즉위하자 우의정과 좌의정에 올랐다. 1613년 벼슬을 버리고 신창현<新昌縣> 도고산 밑에 초가를 짓고 연구에 침잠<沈潛>하였다. 때문에 예산과 인연이 맺어 묘소가 예산 신양에 있다.
선조<宣祖>12년에 태어난 선생의 자는 비경<飛卿> 호는 포저<浦渚>이다. 선조 25년에 문과에 급제한후 호당<湖堂>에 있었고 1609년(광해군 1년)에 병조좌당을 거쳐 수찬<修撰>에 재직중 정인홍, 이황 등이 문묘배향<文廟配享>을 반대하자 탄액하다가 고산도찰방으로 좌천되었다가 이듬해 다시 웅천 현감이 되었다. 1623년 인조왕이 즉위하자 맨먼저 기용되어 이조좌랑이 되었다. 이때 김육이 제창한 대동법<大同法>의 시행을 적극 주장 효종이 즉위하자 우의정과 좌의정에 올랐다. 1613년 벼슬을 버리고 신창현<新昌縣> 도고산 밑에 초가를 짓고 연구에 침잠<沈潛>하였다. 때문에 예산과 인연이 맺어 묘소가 예산 신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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