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추사 김정희 선생의 증조부<曾祖父>인 김한신<金漢藎>은 1720(숙종 46년) 영의정<領議政> 김흥경<金興慶> 아들로 태어나 13세때에 영조<英祖>의 장녀 화순옹주<和順翁主>와 결혼하여 월성위<月城尉>로 봉해졌다. 추사선생 일문<一門>을 흔히 월성김문<月城金門>으로 부르는 것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벼슬은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官> 제용감제조<濟用監提調>에 이르렀다. 글씨를 잘 썼으며 시문에 능하였다. 시호는 정효공<貞孝公>이다. 김한신<金漢藎>이 38세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화순옹주<和順翁主>는 애도<哀悼>의 정<情>이 극에 달하여 곧 부군을 따라 세상을 떠나셨다. 옹주는 부마의 묘에 합장<合葬>되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증조부<曾祖父>인 김한신<金漢藎>은 1720(숙종 46년) 영의정<領議政> 김흥경<金興慶> 아들로 태어나 13세때에 영조<英祖>의 장녀 화순옹주<和順翁主>와 결혼하여 월성위<月城尉>로 봉해졌다. 추사선생 일문<一門>을 흔히 월성김문<月城金門>으로 부르는 것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벼슬은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官> 제용감제조<濟用監提調>에 이르렀다. 글씨를 잘 썼으며 시문에 능하였다. 시호는 정효공<貞孝公>이다. 김한신<金漢藎>이 38세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화순옹주<和順翁主>는 애도<哀悼>의 정<情>이 극에 달하여 곧 부군을 따라 세상을 떠나셨다. 옹주는 부마의 묘에 합장<合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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