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227
조선말< 朝鮮末 > 흥선대원군< 興宣大阮君 >이 집정< 執政 >을 하게 되자 풍수지리설< 風水地理說 >에 의하여 명당이라 하는 가야사< 伽倻寺 > 터에, 절을 허물고 부친< 父親 > 남연군< 南延君 >의 능< 陵 >을 안치하였다. 그후 고종황제< 高宗皇帝 > 등 왕손이 번창하므로 대원군이 가야사의 공덕을 갚는다 하여 고종< 高宗 > 2년(1865, 을축< 乙丑 >년) 5월 현 장소에 보덕사를 창건하였다. 6·25동란으로 파손된 것을 1951년 2월에 비구니 정수옥 스님이 중창했다. 그후 비구니 서종현 주지가 1967년에 연못, 1974년에 단청, 1976년에 진입로 주차장 등을 시설하였다. 경내에는 석등< 石燈 >의 화사석< 火舍石 >과 그 받침 및 옥개석< 屋蓋石 >이 남아 있는데, 특히 화사석은 8각으로 되어 4면에 4천왕상< 四天王像 >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그 조각수법으로 보아 오래된 고찰< 古刹 >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말< 朝鮮末 > 흥선대원군< 興宣大阮君 >이 집정< 執政 >을 하게 되자 풍수지리설< 風水地理說 >에 의하여 명당이라 하는 가야사< 伽倻寺 > 터에, 절을 허물고 부친< 父親 > 남연군< 南延君 >의 능< 陵 >을 안치하였다. 그후 고종황제< 高宗皇帝 > 등 왕손이 번창하므로 대원군이 가야사의 공덕을 갚는다 하여 고종< 高宗 > 2년(1865, 을축< 乙丑 >년) 5월 현 장소에 보덕사를 창건하였다. 6·25동란으로 파손된 것을 1951년 2월에 비구니 정수옥 스님이 중창했다. 그후 비구니 서종현 주지가 1967년에 연못, 1974년에 단청, 1976년에 진입로 주차장 등을 시설하였다. 경내에는 석등< 石燈 >의 화사석< 火舍石 >과 그 받침 및 옥개석< 屋蓋石 >이 남아 있는데, 특히 화사석은 8각으로 되어 4면에 4천왕상< 四天王像 >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그 조각수법으로 보아 오래된 고찰< 古刹 >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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