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여군 규암면 모리 290
임진왜란(1592∼1597)이전에 중자인 휘 사안에 의하여 초판이 이루어졌으나 임진왜란시 소실되었다. 인쇄본은 전하지 않는다. 광해 2년(1610)년에 손자 진의공 위 여임이 재판각 하였다. 현종 10년(1669)에 5대손 저동이 경상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송시열이 선한 선도비문을 부록으로 재간행 하였다. 영조 12년(1736)에 누락된 시문 및 저사, 을사사화 전후에 행한 입암공의 언론과 공사화에 관계된 증빙자료들을 수집하여 간행하였다.
임진왜란(1592∼1597)이전에 중자인 휘 사안에 의하여 초판이 이루어졌으나 임진왜란시 소실되었다. 인쇄본은 전하지 않는다. 광해 2년(1610)년에 손자 진의공 위 여임이 재판각 하였다. 현종 10년(1669)에 5대손 저동이 경상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송시열이 선한 선도비문을 부록으로 재간행 하였다. 영조 12년(1736)에 누락된 시문 및 저사, 을사사화 전후에 행한 입암공의 언론과 공사화에 관계된 증빙자료들을 수집하여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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