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
유백색랍석< 乳白色蠟石 >으로 조각된 이 불상은 백제< 百濟 >의 특징을 두드러지게 간직하고 있다. 소발< 素髮 >의 머리에는 작고 팽이 같은 육계< 肉계 >가 있는데 이것은 초기 중국불< 中國佛 >의 영향이 강하던 수법과는 다르다. 얼굴은 둥글고 옷에 싸여서 몸의 량감< 量感 >은 드러나지 않고 있으며 발의 표현도 없다. 좁아진 어깨라든지 양손을 배에 맞잡고 있는 것 등은 그대로 옛날 수법이다. 통견< 通肩 >의 납의< 衲衣 >는 매우 두꺼우며 앞가슴이 조금 터진 곳에는 만자< 卍字 >가 음각< 陰刻 >되었다. 계단식 의문< 衣文 >을 그리면서 내려오던 옷자락은 대좌< 臺座 >를 덮어 상현좌< 裳懸座 >를 만들고 있는데, 이 상현좌의 옷자락은 아직도 소박성이랄까 탄력성이랄까, 그런 사실감< 寫實感 >이 넘치고 있다. 대좌< 臺座 >는 옷자락에 거의 가려 버렸지만 조금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돌을 그냥 4각형으로 깎아 만들었을 뿐임을 알 수 있다. 1936년 가을 부여읍< 夫餘邑 > 군수리< 軍守里 >에 있는 백제 절터를 조사했을 때 목조탑심< 木造塔心 > 초석< 礎石 > 바로 위가 되는 땅 위 약 5피트 되는 곳에서 출토되었다.
유백색랍석< 乳白色蠟石 >으로 조각된 이 불상은 백제< 百濟 >의 특징을 두드러지게 간직하고 있다. 소발< 素髮 >의 머리에는 작고 팽이 같은 육계< 肉계 >가 있는데 이것은 초기 중국불< 中國佛 >의 영향이 강하던 수법과는 다르다. 얼굴은 둥글고 옷에 싸여서 몸의 량감< 量感 >은 드러나지 않고 있으며 발의 표현도 없다. 좁아진 어깨라든지 양손을 배에 맞잡고 있는 것 등은 그대로 옛날 수법이다. 통견< 通肩 >의 납의< 衲衣 >는 매우 두꺼우며 앞가슴이 조금 터진 곳에는 만자< 卍字 >가 음각< 陰刻 >되었다. 계단식 의문< 衣文 >을 그리면서 내려오던 옷자락은 대좌< 臺座 >를 덮어 상현좌< 裳懸座 >를 만들고 있는데, 이 상현좌의 옷자락은 아직도 소박성이랄까 탄력성이랄까, 그런 사실감< 寫實感 >이 넘치고 있다. 대좌< 臺座 >는 옷자락에 거의 가려 버렸지만 조금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돌을 그냥 4각형으로 깎아 만들었을 뿐임을 알 수 있다. 1936년 가을 부여읍< 夫餘邑 > 군수리< 軍守里 >에 있는 백제 절터를 조사했을 때 목조탑심< 木造塔心 > 초석< 礎石 > 바로 위가 되는 땅 위 약 5피트 되는 곳에서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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