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
보광사 중창비는 고려< 高麗 > 원종< 元宗 >(1259∼1274, 재위) 때 보광사를 크게 일으킨 원명국사< 圓明國師 >의 공적< 功績 >이 새겨져 있는 비로서 충렬왕< 忠烈王 > 7년(1281)에 세워졌다. 보광사는 임천면< 林川面 >의 성주산< 聖住山 >에 있었던 고려< 高麗 >·조선시대< 朝鮮時代 >의 옛 절로서당시 절의 규모< 規模 >는 500칸< 間 >에 이르는 큰 사찰< 寺刹 >이었다. 편마암제< 片麻岩製 >로 비신< 碑身 > 윗변 양모서리를 접고, 앞면 주연< 周緣 >에 화려한 보상화문< 寶相華紋 >을 조각하였다. 높이가 230cm인 이 비문은 2차< 二次 >에 걸쳐 새겨졌는데, 앞면은 건립< 建立 > 당시에 되었고, 뒷면은 조선< 朝鮮 > 영조< 英祖 > 26년(1750)에 추가한 것으로 여기에는 임진왜란< 壬辰倭亂 > 때 절과 비각이 불에 타 없어지자 절을 고쳐 지은 사실을 기록하였다. 원명국사는 19세에 등과< 登科 >하여 선문< 禪門 >에서 수도< 修道 >하였으며 선원사< 禪源寺 >에서 종지< 宗旨 >를 펴오다가 원종< 元宗 > 6년(1265)에 보광사로 왔고, 10년 후인 세수 65세에 입적< 入寂 >하였다. 이 비는 고려 후기의 건비양식< 建碑樣式 >과 불교사< 佛敎史 > 연구< 硏究 >에 좋은 자료가 된다.
보광사 중창비는 고려< 高麗 > 원종< 元宗 >(1259∼1274, 재위) 때 보광사를 크게 일으킨 원명국사< 圓明國師 >의 공적< 功績 >이 새겨져 있는 비로서 충렬왕< 忠烈王 > 7년(1281)에 세워졌다. 보광사는 임천면< 林川面 >의 성주산< 聖住山 >에 있었던 고려< 高麗 >·조선시대< 朝鮮時代 >의 옛 절로서당시 절의 규모< 規模 >는 500칸< 間 >에 이르는 큰 사찰< 寺刹 >이었다. 편마암제< 片麻岩製 >로 비신< 碑身 > 윗변 양모서리를 접고, 앞면 주연< 周緣 >에 화려한 보상화문< 寶相華紋 >을 조각하였다. 높이가 230cm인 이 비문은 2차< 二次 >에 걸쳐 새겨졌는데, 앞면은 건립< 建立 > 당시에 되었고, 뒷면은 조선< 朝鮮 > 영조< 英祖 > 26년(1750)에 추가한 것으로 여기에는 임진왜란< 壬辰倭亂 > 때 절과 비각이 불에 타 없어지자 절을 고쳐 지은 사실을 기록하였다. 원명국사는 19세에 등과< 登科 >하여 선문< 禪門 >에서 수도< 修道 >하였으며 선원사< 禪源寺 >에서 종지< 宗旨 >를 펴오다가 원종< 元宗 > 6년(1265)에 보광사로 왔고, 10년 후인 세수 65세에 입적< 入寂 >하였다. 이 비는 고려 후기의 건비양식< 建碑樣式 >과 불교사< 佛敎史 > 연구< 硏究 >에 좋은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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