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산12
지리산 남악사는 삼국시대부터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지리산신제<智異山神祭>를 모신 곳이었다. 당시의 제사는 천왕봉에서 지냈던 것으로 추측되어 고려 때에 이르러 천왕봉에서 노고단으로 옮겨졌다. 조선초인 세조 2년(1456) 지리산이 남악으로 다시 정해지면서 남악사는 노고단에서 더 아래쪽으로 옮겨졌는데 그 위치는 갈뫼봉 북쪽 내산면 좌사리 당동이라고 전해 온다. 다시 광의면 온당리 당동으로 이전하였다. 그 뒤 남악사는 영조 13년(1737) 남원부사의 전격적인 지원으로 그 규모가 대대적으로 일신되었는데 『남원지』에 「남악사에는 ‘지리산지신’」이라 씌여진 위패가 있으며, 매년 봄과 가을, 설날에 왕명으로 제를 올렸는데 혹은 재난이 있을 때마다 별도로 제를 올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헌관<獻官>은 당상관, 대축은 수령, 집사는 생원·진사·유생들이 맡았으며 제물은 관에서 마련하였다. 예전에는 3칸 뿐이어서 제관들이 불편해 하였으므로 영조 13년 남원부사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여러 건물들을 마련하여 규모와 의전을 일신하였던 것이다. 영조때의 대대적인 중수 이후 온당리 당동의 남악사는 1908년 일제에 의해 헐릴때까지 국가가 주관하여 지리산신을 제향하는 산신사<山神祠>로 존속하였다. 폐사된 뒤 그터(온당리 72-1번지)만이 남아 있다가 1969년 뜻있는 인사들과 군민들의 합력으로 화엄사지장암 옆에 10여평 규모의 남악사를 다시 새로 건립하여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의 남악사제는 매년 곡우절을 기해 구례군민의 날에 약수제로 변형되어 전야제와 농악을 비롯한 궁도, 씨름 등 각종 민속행사도 행하고 있다. 현재의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맞배지붕이다. 온당리 남악사지는 목포대학교박물관에서 시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건물지는 수습유물의 성격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 또는 고려초에 사찰이 있었을 가능성이 많으며, 그 뒤 사찰은 폐사되고 조선시대에 들어와 남악사가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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