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 70
조선에서는 정유재란의 피해를 입은 뒤 광해군 2년(1610)혜정대사가 중수, 숙종 5년(1679)에는 단유대사<袒裕大師>가 건물을 복원하였는데 불행하게도 영조 49년(1773)에 전불당이 화재를 만나 소실되었는데, 그 이듬해부터 혜암스님이 복원하면서 오늘의 천은사로 이름을 고쳐 불렀다고 한다. 현재 사내에는 20여 동의 건물이 있다. 이웃의 화엄사가 화엄의 본거지인 점과는 달리 주법당이 극락전이라는데 다른 면이 있다. 현 법당인 극락전은 지방유형문화재 제50호로 다포양식을 갖춘 화려한 건물로 조선후기의 대표적 예로 손꼽인다. 주위의 풍광이 아름다우며 경내에는 극락전 아미타후불탱화인 보물1점과 지방 문화재 2점이 있다.
조선에서는 정유재란의 피해를 입은 뒤 광해군 2년(1610)혜정대사가 중수, 숙종 5년(1679)에는 단유대사<袒裕大師>가 건물을 복원하였는데 불행하게도 영조 49년(1773)에 전불당이 화재를 만나 소실되었는데, 그 이듬해부터 혜암스님이 복원하면서 오늘의 천은사로 이름을 고쳐 불렀다고 한다. 현재 사내에는 20여 동의 건물이 있다. 이웃의 화엄사가 화엄의 본거지인 점과는 달리 주법당이 극락전이라는데 다른 면이 있다. 현 법당인 극락전은 지방유형문화재 제50호로 다포양식을 갖춘 화려한 건물로 조선후기의 대표적 예로 손꼽인다. 주위의 풍광이 아름다우며 경내에는 극락전 아미타후불탱화인 보물1점과 지방 문화재 2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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