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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동헌 - 부여동헌 (扶餘東軒)

by 넥스루비 2007. 8. 7.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28-4

이곳 관북리< 官北里 >는 조선시대< 朝鮮時代 > 부여현< 扶餘縣 >의 관아< 官衙 >건물들이 있던 곳으로 박물관 경내에는 동헌·객사< 客舍 >·내동헌< 內東軒 >(내아< 內衙 >)이 보존되어 있다. 동헌은 초연당< 超然堂 > 또는 제민헌< 齊民軒 >이라 하여 당시 부여현의 공사< 公事 >를 처리하던 대청이다. 조선< 朝鮮 > 고종< 高宗 > 6년(1869)에 개건 후, 1985년 크게 중수하였다. 정면 5칸 측면 2칸 크기의 팔작지붕에 민도리집이다. 서쪽은 대청마루로 외벽은 판벽< 板壁 >을 치고 널문을 달았다. 동쪽에는 온돌방을 들였고, 그 전면인 남쪽에는 툇마루를 달았다. 객사는 현액이 부풍관< 扶風館 >이다. 왕명을 받들고 내려오는 벼슬아치를 접대하고 유숙시키던 곳으로, 동헌과 같은 해에 개건하였다. 구한말 관제< 官制 > 폐지 후 학교 교사, 박물관, 진열관으로 사용되면서 다소 변형되었으나 기본 구조는 남아 있다. 중앙의 정당< 正堂 >은 맞배지붕집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 크기로 공포< 공包 >는 출목이 없는 이익공식< 二翼工式 >이다. 정면 중앙칸에는 쇠서에 봉두< 鳳頭 >를 조각하여 장식하였으며, 다른 익공 쇠서들에는 연봉을 조각하였다. 동서 익실< 翼室 >은 각각 정면 3칸 측면 2칸 크기의 팔작지붕집이다. 초익공계< 初翼工系 >의 기법으로 지었으나, 후면에는 짧은 부재< 部材 >를 기둥머리에 끼워 하중< 荷重 >을 받쳤다. 원래 이 익실들에는 온돌방을 들였었으며, 정당의 대청에는 궐패< 闕牌 >를 모셨었다. 고종 17년(1880) 중수하면서 기록한 부풍관중수기< 扶風館重修記 >가 전한다. 그외 현감< 縣監 >의 숙사인 내동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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