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여군 세도면 동사리 622
고려 공민왕<恭愍王>때 회양<淮陽> 부사<府使>(지금의 군수)였던 조신(<趙愼>, 생몰연대 미상)선생을 제향<祭享>하는 서원이다. 선생은 고려 말 신돈이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고려의 국운이 기울자 임천<林川>의 덕림<德林>(오늘날 장암면 점상리)에 은거하였다. 박팽년<朴彭年>·유성원<柳誠源> 등의 문하생을 길러냈고, 이색<李穡>·정몽주<鄭夢周>와도 교분이 두터웠다고 하며, 태종의 어릴적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다. 건물 배치는 'ㅁ'자집 평면이며 강당과 재실이 있다. 안마당을 중심으로 각 방이 배치되어 있어 마치 살림집 모습을 보는 것 같은데 바깥채는 전학당<典學堂>이고, 안채는 화수루<花樹樓>이다. 고종<高宗> 5년(1868) 대원군의 서원<書院> 철폐령<撤廢令>으로 철거되었다가 1930년 지방 유림<儒林>들에 의해 현재의 상태로 복원되었다.
고려 공민왕<恭愍王>때 회양<淮陽> 부사<府使>(지금의 군수)였던 조신(<趙愼>, 생몰연대 미상)선생을 제향<祭享>하는 서원이다. 선생은 고려 말 신돈이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고려의 국운이 기울자 임천<林川>의 덕림<德林>(오늘날 장암면 점상리)에 은거하였다. 박팽년<朴彭年>·유성원<柳誠源> 등의 문하생을 길러냈고, 이색<李穡>·정몽주<鄭夢周>와도 교분이 두터웠다고 하며, 태종의 어릴적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다. 건물 배치는 'ㅁ'자집 평면이며 강당과 재실이 있다. 안마당을 중심으로 각 방이 배치되어 있어 마치 살림집 모습을 보는 것 같은데 바깥채는 전학당<典學堂>이고, 안채는 화수루<花樹樓>이다. 고종<高宗> 5년(1868) 대원군의 서원<書院> 철폐령<撤廢令>으로 철거되었다가 1930년 지방 유림<儒林>들에 의해 현재의 상태로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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