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여군 임천면 만사리 191
풍양 조씨 조박(<趙璞>, 1577∼1650), 조견소(<趙見素>, 1611∼1677), 조성복(<趙聖復>, 1681∼1723)을 모신 서원으로 영조 33년(1757)에 세웠다. 원래 세도면<世道面> 동사리<東寺里>에 세웠고, 제향<祭享> 인물도 조성복뿐이었으나, 1957년 이 자리로 옮기면서 조박과 조견소를 추가로 제향하였다. 조박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인조<仁祖>를 모셨고 많은 저술을 남겼다. 조견소는 금구 현령을 사직하고 임천에 은거하면서 학문에 전념하였다. 조성복은 호를 퇴수재<退修齋>라 하였고, 숙종<肅宗> 28년(1702) 별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벼슬이 대사간<大司諫>에 올랐는데, 윤선거<尹宣擧>의 문집을 폐간시킬 것을 요청하는등 강력하게 노론측 주장을 하다가 신임사화<辛壬士禍>로 유배되어 유배지에서 죽었다.
풍양 조씨 조박(<趙璞>, 1577∼1650), 조견소(<趙見素>, 1611∼1677), 조성복(<趙聖復>, 1681∼1723)을 모신 서원으로 영조 33년(1757)에 세웠다. 원래 세도면<世道面> 동사리<東寺里>에 세웠고, 제향<祭享> 인물도 조성복뿐이었으나, 1957년 이 자리로 옮기면서 조박과 조견소를 추가로 제향하였다. 조박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인조<仁祖>를 모셨고 많은 저술을 남겼다. 조견소는 금구 현령을 사직하고 임천에 은거하면서 학문에 전념하였다. 조성복은 호를 퇴수재<退修齋>라 하였고, 숙종<肅宗> 28년(1702) 별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벼슬이 대사간<大司諫>에 올랐는데, 윤선거<尹宣擧>의 문집을 폐간시킬 것을 요청하는등 강력하게 노론측 주장을 하다가 신임사화<辛壬士禍>로 유배되어 유배지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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