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여군 부여읍 용정리 405-12외 4필
이곳은 백제시대의 건물터이다. 건물은 동남을 향해 앞 뒤로 2동이 배치되어 있었다. 남쪽 건물터의 기단은 자연석을 잘 다듬어 2∼3단 쌓고 기단 앞에는 돌을 납작하게 깔아 두었다. 북쪽 건물터는 남쪽 건물터와 나란한 방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두 건물은 석재를 다듬은 솜씨와 출토 유물로 보아 같은 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연꽃무늬 수막새를 비롯하여 지붕 용마루 양 끝에 놓았던 치미 조각, 기와 조각, 벼루, 등잔 외에 여러 가지 백제 토기 조각이 출토되었다. 또 자배기 표면에는「증<甑>」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부여 지방에서는 비교적 큰 건물터에 속하며, 나성<羅城>밖에서 규모가 큰 기와집이 나온 것이 특이하다. 출토 유물로 보아 특수한 기능을 가졌던 건물로 추정된다.
이곳은 백제시대의 건물터이다. 건물은 동남을 향해 앞 뒤로 2동이 배치되어 있었다. 남쪽 건물터의 기단은 자연석을 잘 다듬어 2∼3단 쌓고 기단 앞에는 돌을 납작하게 깔아 두었다. 북쪽 건물터는 남쪽 건물터와 나란한 방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두 건물은 석재를 다듬은 솜씨와 출토 유물로 보아 같은 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연꽃무늬 수막새를 비롯하여 지붕 용마루 양 끝에 놓았던 치미 조각, 기와 조각, 벼루, 등잔 외에 여러 가지 백제 토기 조각이 출토되었다. 또 자배기 표면에는「증<甑>」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부여 지방에서는 비교적 큰 건물터에 속하며, 나성<羅城>밖에서 규모가 큰 기와집이 나온 것이 특이하다. 출토 유물로 보아 특수한 기능을 가졌던 건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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