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
금동미륵보살반가상< 金銅彌勒菩薩半跏像 >(국보 제78호)과 함께 국내 최대의 금동 반가상이다. 기본형에 있어서 피차에 다른 점이 없으나, 조형감각과 세부기법에 있어서는 같지 않은 일면을 가지고 있다. 국보< 國寶 > 제78호 반가상이 직절적< 直截的 >이고 날카로우며 장식적이고 기교적이라면, 이것은 풍요 원만한 지체< 肢體 >와 간소 명랑한 표현형식이 오히려 감각적인 육체를 통하여 생동하는 미를 볼 수 있다. 머리에는 조그맣고 둥근 삼산관< 三山冠 >을 쓰고, 얼굴은 거의 원< 圓 >에 가까울 정도로 풍만한데, 눈은 가늘고 눈썹은 아름다운 고선< 孤線 >을 그리며, 눈두덩과 입가에서 미소를 풍기고 있다. 길게 늘어진 귓불에는 구멍이 뚫려 있고, 상반신은 전라< 全裸 >의 모습이며, 몸에는 목에 2줄로 표현된 목걸이가 걸려 있을 뿐 아무 장식도 없다. 왼발은 내려서 작은 연좌< 연좌 >를 밟고, 오른발은 그 무릎 위에 얹어 놓았는데, 왼손으로 그 발목을 잡고, 오른손은 팔꿈치를 무릎에 얹었으며, 손가락으로 턱을 살며시 괴고 있다. 아랫몸을 덮은 하상< 下裳 >은 매우 얇아서 아랫몸의 표현에 충실하고, 쌍판< 雙瓣 > 복련< 複蓮 >의 대좌< 臺座 >를 덮은 옷주름은 깊고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연화대< 蓮華臺 >가 거의 다 드러나 있는데, 왼쪽으로 규옥< 圭玉 >을 맨 상의< 상의 >띠가 내려가고 있다. 뒷머리부분에 긴 촉이 달려 있는 것을 보면 원래 광배< 光背 >가 있었던 것 같다. 온몸에는 도금< 鍍金 >한 위에 칠금< 漆金 >을 올렸던 듯 금빛이 은은하다. 1963년, 방사선 투과법에 의한 조사를 한 결과, 머리부분에서 몸통에 걸쳐 4각 막대기의 지주가 박혀 있고, 왼발부분에는 보수한 흔적을 볼 수 있었는데, 이것도 못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았다. 이 불상은 막연히 경주< 慶州 > 오릉< 五陵 > 근처 절터에서 발견된 것이라고 전하나 근거 없는 말이며, 아직 그것이 전해져 오는 유래를 알 수 없다. 다만 조각수법으로 보아 국보< 國寶 > 제78호 반가상보다 연대가 내려와, 삼국< 三國 > 말기에 가까운 시기의 제작이 아닌가 추정되고 있다.
금동미륵보살반가상< 金銅彌勒菩薩半跏像 >(국보 제78호)과 함께 국내 최대의 금동 반가상이다. 기본형에 있어서 피차에 다른 점이 없으나, 조형감각과 세부기법에 있어서는 같지 않은 일면을 가지고 있다. 국보< 國寶 > 제78호 반가상이 직절적< 直截的 >이고 날카로우며 장식적이고 기교적이라면, 이것은 풍요 원만한 지체< 肢體 >와 간소 명랑한 표현형식이 오히려 감각적인 육체를 통하여 생동하는 미를 볼 수 있다. 머리에는 조그맣고 둥근 삼산관< 三山冠 >을 쓰고, 얼굴은 거의 원< 圓 >에 가까울 정도로 풍만한데, 눈은 가늘고 눈썹은 아름다운 고선< 孤線 >을 그리며, 눈두덩과 입가에서 미소를 풍기고 있다. 길게 늘어진 귓불에는 구멍이 뚫려 있고, 상반신은 전라< 全裸 >의 모습이며, 몸에는 목에 2줄로 표현된 목걸이가 걸려 있을 뿐 아무 장식도 없다. 왼발은 내려서 작은 연좌< 연좌 >를 밟고, 오른발은 그 무릎 위에 얹어 놓았는데, 왼손으로 그 발목을 잡고, 오른손은 팔꿈치를 무릎에 얹었으며, 손가락으로 턱을 살며시 괴고 있다. 아랫몸을 덮은 하상< 下裳 >은 매우 얇아서 아랫몸의 표현에 충실하고, 쌍판< 雙瓣 > 복련< 複蓮 >의 대좌< 臺座 >를 덮은 옷주름은 깊고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연화대< 蓮華臺 >가 거의 다 드러나 있는데, 왼쪽으로 규옥< 圭玉 >을 맨 상의< 상의 >띠가 내려가고 있다. 뒷머리부분에 긴 촉이 달려 있는 것을 보면 원래 광배< 光背 >가 있었던 것 같다. 온몸에는 도금< 鍍金 >한 위에 칠금< 漆金 >을 올렸던 듯 금빛이 은은하다. 1963년, 방사선 투과법에 의한 조사를 한 결과, 머리부분에서 몸통에 걸쳐 4각 막대기의 지주가 박혀 있고, 왼발부분에는 보수한 흔적을 볼 수 있었는데, 이것도 못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았다. 이 불상은 막연히 경주< 慶州 > 오릉< 五陵 > 근처 절터에서 발견된 것이라고 전하나 근거 없는 말이며, 아직 그것이 전해져 오는 유래를 알 수 없다. 다만 조각수법으로 보아 국보< 國寶 > 제78호 반가상보다 연대가 내려와, 삼국< 三國 > 말기에 가까운 시기의 제작이 아닌가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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