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116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 선생(1435∼1439)의 초상화이다. 선생은 세조<世祖>때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으로 유학과 불교에 능통한 학자로서 말년에 무량사<無量寺>에 은거하다가 59세에 세상을 떠났다. 야복 차림에 패랭이형의 모자를 쓰고 있으며, 얼굴 윤곽선과 모습을 옅은 갈색으로 대비시켜 조화있는 화면을 구성했다. 수염은 회색 바탕에 검은 선으로 섬세하게 그려 조선초기 초상화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초상화는 선생의 청년기와 노년기의 모습 두 종류가 있었다고 전해지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그중 어느때의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조선 초기<朝鮮 初期>의 초상화<肖像畵>는 현재 수폭밖에 전해오지 않을뿐 아니라 그것도 이모<移模>나 가채<加彩>가 심한데 비해, 이 김시습 초상화는 원본 그대로 초기의 화법을 보여주는 귀중한 작품이다. (매월당집)에 의하면 김시습은 생전에 두 상의 자화상<自畵像>을 그렸다. 하지만 이 상은 자화상으로 단정한 근거는 없다. 그러나 자화상 여부를 불문하고 이 초상화는 김시습이란 한 인간의 복잡한 내면 세계를 약간 찌푸린 눈매, 꼭다문 입술, 눈의 총기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으며, 이런 점에서 초상예술의 진수<眞髓>라 할 '전신<傳神>'이 탁월하게 이루어진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 선생(1435∼1439)의 초상화이다. 선생은 세조<世祖>때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으로 유학과 불교에 능통한 학자로서 말년에 무량사<無量寺>에 은거하다가 59세에 세상을 떠났다. 야복 차림에 패랭이형의 모자를 쓰고 있으며, 얼굴 윤곽선과 모습을 옅은 갈색으로 대비시켜 조화있는 화면을 구성했다. 수염은 회색 바탕에 검은 선으로 섬세하게 그려 조선초기 초상화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초상화는 선생의 청년기와 노년기의 모습 두 종류가 있었다고 전해지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그중 어느때의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조선 초기<朝鮮 初期>의 초상화<肖像畵>는 현재 수폭밖에 전해오지 않을뿐 아니라 그것도 이모<移模>나 가채<加彩>가 심한데 비해, 이 김시습 초상화는 원본 그대로 초기의 화법을 보여주는 귀중한 작품이다. (매월당집)에 의하면 김시습은 생전에 두 상의 자화상<自畵像>을 그렸다. 하지만 이 상은 자화상으로 단정한 근거는 없다. 그러나 자화상 여부를 불문하고 이 초상화는 김시습이란 한 인간의 복잡한 내면 세계를 약간 찌푸린 눈매, 꼭다문 입술, 눈의 총기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으며, 이런 점에서 초상예술의 진수<眞髓>라 할 '전신<傳神>'이 탁월하게 이루어진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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