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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로사 - 조선 단종의 폐위로 세조에 항거한 명인 10문의 고결한 절개가..

by 넥스루비 2007. 8. 7.
전북 남원시 대강면 생암리 산47-1

全羅北道 南原郡 帶江面 廣洞村 아래 鼈堂洞에는 十老祠라는 祠堂이 있다. 이 곳은 조선 시대 忠節에 가득찬 열분을 모시고 祭祀를 드리는 곳이다.
朝鮮 世宗 때에 童蒙敎官을 지내던 遯菴 張肇平께서는 德望과 재주가 있어 모든 사람들의 칭송이 대단히 높았던 분이다. 그러나 어린 단종이 12세의 나이로 登極하자 野心에 가득찬 叔父 首陽大君이 王位를 빼앗고 어린 조카를 영월 땅으로 귀양을 보낸 후 마침내 목숨까지 빼앗고 말았다.
이를 본 臣僚와 百姓들은 筒憤함을 금치 못했으며 벼슬을 버리고 落鄕하는 사람들이 不知其數였다. 漢陽에서 벼슬하고 있었던 遯菴公께서도 官職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淳昌의 追山 아래에 隱遁하고 端宗에 대한 忠節을 지키었다.
그 당시 淳昌 땅에는 歸來亭 申末舟, 遯世 趙閏屋, 部將을 지낸 李允哲, 參判을 지낸 金博과, 韓承愈, 安正, 薛存義, 薛山玉, 吳惟敬 등이 서로 울분한 心情을 토로하고, 또한 忠君愛慕의 詩를 지면서 世上을 慨嘆하면서 사셨다. 이와 같은 생활은 서로의 義氣가 통하여 十老契를 조직하게 되었고, 堅固한 信義과, 後代까지 忠節을 지키려는 뜻으로 자기의 肖像畵를 그리고 그 畵幅에 詩 한수씩을 적었다.
그후 遯菴公 後孫들은 學問에 精하여 높은 경지에 이르렀으나 公의 거룩한 精神을 이어 받아 科擧에 應하거나 벼슬을 구하지 않았던 것이다.
1910 년 帝國主義 侵略으로 조선 왕조가 멸망하고 日帝 植民地下의 어두운 時節이 시작되자 평소 나라를 구하고 民族 精神 살리는데 애쓰시던 廣洞村의 指導者 參奉公 張仁模는 十老祠 創建을 推進하게 되었다. 宗問 大小家의 物心兩面의 도움과 孫子인 松齋 張釋均公의 獻身的인 努力에 의해 드디어 十老祠가 1922년 完工을 보았다.
每年 9月 末 丁日에는 隣近의 子孫들이 모여 敬虔하고 嚴肅한 祭祀를 드리면서 祖上의 거룩한 忠節精神의 高揚과 親族和合에 邁進하고 있다.
現在 十老祠 建物은 全羅北道 地方 文化財로 指定되었으며 遯菴公後孫들의 精誠어린 努力으로 守護 保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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