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211-1외 25필
이곳은 절의 이름이나 유래가 전해지지 않는 백제< 百濟 >의 폐사지< 廢寺址 >이다. 1938년 절터 일부가 발굴조사되었다. 가람< 伽藍 >의 배치방식은 남북일직선을 중심으로 하여 중문< 中門 >, 금당< 金堂 >, 강당< 講堂 >이 서 있었고, 회랑< 廻廊 >이 중문에서 강당으로 이어져 있었다. 중문에서 금당, 금당에서 강당, 금당에서 양 회랑까지의 거리는 각각 21.2m이다. 사역의 범위는 약 4,960㎡로, 조사 당시 길이 28m의 배수구< 排水口 >와 수조< 水槽 > 2개가 발견되었다. 그외 납석제< 蠟石製 > 불상편< 佛像片 >, 와제< 瓦製 > 광배편< 光背片 >, 동제< 銅製 > 금구편< 金具片 >, 동제 불상편 등 다양한 토기와 기와가 출토되었다. 탑과 건축이 확인되지 않은 특이한 가람배치를 보이고 있으며, 정림사지< 定林寺址 >, 군수리사지< 軍守里寺址 > 등과 함께 백제의 불교사원 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한편 이 절터 앞을 지나 나성< 羅城 >의 서문지< 西門址 >에 이르는 소로는 백제 때부터의 길로 추정하고 있다.
이곳은 절의 이름이나 유래가 전해지지 않는 백제< 百濟 >의 폐사지< 廢寺址 >이다. 1938년 절터 일부가 발굴조사되었다. 가람< 伽藍 >의 배치방식은 남북일직선을 중심으로 하여 중문< 中門 >, 금당< 金堂 >, 강당< 講堂 >이 서 있었고, 회랑< 廻廊 >이 중문에서 강당으로 이어져 있었다. 중문에서 금당, 금당에서 강당, 금당에서 양 회랑까지의 거리는 각각 21.2m이다. 사역의 범위는 약 4,960㎡로, 조사 당시 길이 28m의 배수구< 排水口 >와 수조< 水槽 > 2개가 발견되었다. 그외 납석제< 蠟石製 > 불상편< 佛像片 >, 와제< 瓦製 > 광배편< 光背片 >, 동제< 銅製 > 금구편< 金具片 >, 동제 불상편 등 다양한 토기와 기와가 출토되었다. 탑과 건축이 확인되지 않은 특이한 가람배치를 보이고 있으며, 정림사지< 定林寺址 >, 군수리사지< 軍守里寺址 > 등과 함께 백제의 불교사원 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한편 이 절터 앞을 지나 나성< 羅城 >의 서문지< 西門址 >에 이르는 소로는 백제 때부터의 길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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