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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시장 :: "100년" 전통의 광장시장

by 넥스루비 2007. 5. 10.
- 장터: 광장시장
- Address: 서울 종로구 예지동 6-1
구한말 국내 정세가 혼미를 거듭하던 중 일본, 중국 등 열강세력의 각축장으로 국운은 풍전등화격이었다.
1904년 고종제위 41년 "을사조약" 체결 후 실질적으로 주권행사는 일본이 장악했고 따라서 경제침략 정책을 기도한 바 그 한예로서 남대문시장 경영권 장악이었다.
일본의 경제침략의 제어는 경제입국만이 국권회복의 길이라는 취지에서 동대문 광장시장의 설립에 착안 김종한 외 3인의 발기인의 출연으로 토지, 현금 100,000원의 각출금으로 발족하였다.
부지의 선정은 후보지를 청계천 3가,4가의 광교,장교간의 일대를 후보지로 삼고 시장설립을 추진중 1904년의 대홍수로 일단중지 그후 현 국민은행 청계지점자리와 그 주변을 매입하였다가 한성부와의 환지 교섭으로 현 위치를 시장부지로 확정하였다.
1905년 시장의 명칭을 동대문 시장으로 확정하고 법원에 등기 시장의 경영체법인명은 광장주식회사로 명명하였다.
시장개설은 1905년 7월 5일 한성부의 시장개설 허가로 법원의 등기를 필하고 국내 최초의 시장으로 개설하였다.
발족시 시장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면 상거래가 수요공급이 원시적이고 교역의 수단이 단조로화 당시 시장의 활동과 기능이 한산해서 시장의 개장운영이 1일장, 격일장, 3일장, 5일장, 7일장 등 여러 가지 시장 개장 방식이 있었는데 당 시장의 개설과 함께 상설시장으로 운영하였으니 시장 개척상 선구자격인 효시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시장개설시 주요 거래 상품으로는 주로 농수산물, 신탄 등인데 가평.뚝섬 이천, 철원 등지에서 우마차로 반입하는 소규모의 단조로운 원시적인 시장 기능일 뿐이었으나 현재의 주거래 품목으로는 주단, 포목(한복), 직물(양복,양장지), 여성의류제품, 커텐지, 침구, 수예, 나전칠기, 주방용품,수입품코너, 청과,건어물,제수용품,생선,정육,야채 등으로 상당량 거래 규모를 자랑하는 종합적인 면모를 갖춘 시장이라 할 수 있으며, 현재 세계 관광코스로 지정되어 우리나라를 여행하는 많은 외국관광객들의 경유지로 되어 있음을 자랑할 수 있다.



[대중교통]
- 지하철 : 1호선 종로5가
- 버스 : 종로5가 12, 13, 131, 134, 146, 154, 157, 20, 222, 23, 25, 3, 30, 302, 32, 361, 38, 5-1, 53, 543, 55-3, 59, 63-1, 113(좌석), 573(좌석), 902(좌석), 906(좌석), 913(좌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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