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남원시 덕과면 만도리 682-1
호암서원은 덕과면 만도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서를 주벽으로 삼고, 심구령, 안성, 소연, 소산복, 이당 등 6현을 배향하고 있다. 이서는 아호를 송강이라 하였으며, 충숙왕 원년(1332년)에 출생하였다. 그는 공민왕 6년(1357년) 문과에 급제하고, 태조 3년(1394년)에는 대사헌이 되었으며, 태종이 즉위하자 시랑 찬성사에 이어 우의정으로 부원군에 진봉되었으며, 고명사로 명나라를 다녀온 후 영의정까지 올랐다. 시호는 문간공이다. 심구령은 호를 병담이라 하며, 고려 충정왕 2년(1350년) 출생하였다. 태조 7년(1398년) 조선 제1, 2차 왕자의 난때 가담하여 태종 원년(1401년)에는 좌명공신 4등에 올라 풍천군에 봉군되고, 태종 9년(1406년) 9월에는 남해안에 왜구가 침입하자 절제사로 출전, 전라도 해안지방에서 왜구를 격퇴하였다. 시호는 정양공이다. 안성은 아호를 설천 또는 천곡이라 하였으며, 공민왕 원년 (1352년)에 출생하였다. 그는 성품이 청백하여 고려말 상주 판관으로 있으면서 태조 2년(1393년)에 청백리로 올랐다. 세종 3년(1421년)에 자손에게 비를 세우지 말라 하고 사망하였으며, 시호는 사간공이다. 소연은 아호를 행정<杏亭>이라 하였으며, 공양왕 2년(1390년)에 출생하였다. 노성 현감을 지냈다. 소산복은 아호를 매헌이라 하였으며, 명종 11년(1556년)에 출생하였다. 일찍이 일재 이항 문하에서 배웠다. 이당은 본 서원의 주벽 문간공 이서의 후손으로 아호를 죽암이라 하였다.
호암서원은 덕과면 만도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서를 주벽으로 삼고, 심구령, 안성, 소연, 소산복, 이당 등 6현을 배향하고 있다. 이서는 아호를 송강이라 하였으며, 충숙왕 원년(1332년)에 출생하였다. 그는 공민왕 6년(1357년) 문과에 급제하고, 태조 3년(1394년)에는 대사헌이 되었으며, 태종이 즉위하자 시랑 찬성사에 이어 우의정으로 부원군에 진봉되었으며, 고명사로 명나라를 다녀온 후 영의정까지 올랐다. 시호는 문간공이다. 심구령은 호를 병담이라 하며, 고려 충정왕 2년(1350년) 출생하였다. 태조 7년(1398년) 조선 제1, 2차 왕자의 난때 가담하여 태종 원년(1401년)에는 좌명공신 4등에 올라 풍천군에 봉군되고, 태종 9년(1406년) 9월에는 남해안에 왜구가 침입하자 절제사로 출전, 전라도 해안지방에서 왜구를 격퇴하였다. 시호는 정양공이다. 안성은 아호를 설천 또는 천곡이라 하였으며, 공민왕 원년 (1352년)에 출생하였다. 그는 성품이 청백하여 고려말 상주 판관으로 있으면서 태조 2년(1393년)에 청백리로 올랐다. 세종 3년(1421년)에 자손에게 비를 세우지 말라 하고 사망하였으며, 시호는 사간공이다. 소연은 아호를 행정<杏亭>이라 하였으며, 공양왕 2년(1390년)에 출생하였다. 노성 현감을 지냈다. 소산복은 아호를 매헌이라 하였으며, 명종 11년(1556년)에 출생하였다. 일찍이 일재 이항 문하에서 배웠다. 이당은 본 서원의 주벽 문간공 이서의 후손으로 아호를 죽암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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