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군 산동면 시상리 219
조선 순조 6년(1806)에 지방 유지가 계를 조직하여 건립한 정각(亭閣)으로 지방 유지들이 항시 이곳에 모여서 시를 지으면서 즐긴 곳이다. 목조와상에 정면 3간, 측면 3간, 팔작 지붕의 정각이며 건평은 약 83㎡(25평)이다.
바닥은 장귀틀과 동귀틀로 짜맞추어진 누마루를 견실하고 뒷면의 심벽을 제외한 3면은 계자난간을 돌렸다. 가구구조는 평평한 기둥위에 대들보를 걸치고 낮은 동자주를 놓아 종보를 얹은 평오량형식이다. 천장은 연등천정으로 합각 밑의 서까래 모임부분에는 우물천장을 가설하였다. 충량을 측면방향으로 대들보 위에 걸쳤으며 선자서까래의 모습이 잘짜여 있다. 바닥 구성은 좌우측의 툇간은 누마루를 깔았고 중앙은 뒷면까지 방으로 꾸몄다. 방의 좌우면과 정면은 4분합 들어 열개창을 두고 걸쇠를 서까래에 걸어 매달도록 하였다. 정자 내부에는 각종 기문<記文> 80여 개가 걸려 있다. 한편 이곳일대는 조선초기에 전라감사를 지낸 하연<河演>과 용에 얽힌 전설이 있으며 후대에 이를 기록한 비석이 있다.
조선 순조 6년(1806)에 지방 유지가 계를 조직하여 건립한 정각(亭閣)으로 지방 유지들이 항시 이곳에 모여서 시를 지으면서 즐긴 곳이다. 목조와상에 정면 3간, 측면 3간, 팔작 지붕의 정각이며 건평은 약 83㎡(25평)이다.
바닥은 장귀틀과 동귀틀로 짜맞추어진 누마루를 견실하고 뒷면의 심벽을 제외한 3면은 계자난간을 돌렸다. 가구구조는 평평한 기둥위에 대들보를 걸치고 낮은 동자주를 놓아 종보를 얹은 평오량형식이다. 천장은 연등천정으로 합각 밑의 서까래 모임부분에는 우물천장을 가설하였다. 충량을 측면방향으로 대들보 위에 걸쳤으며 선자서까래의 모습이 잘짜여 있다. 바닥 구성은 좌우측의 툇간은 누마루를 깔았고 중앙은 뒷면까지 방으로 꾸몄다. 방의 좌우면과 정면은 4분합 들어 열개창을 두고 걸쇠를 서까래에 걸어 매달도록 하였다. 정자 내부에는 각종 기문<記文> 80여 개가 걸려 있다. 한편 이곳일대는 조선초기에 전라감사를 지낸 하연<河演>과 용에 얽힌 전설이 있으며 후대에 이를 기록한 비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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