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산1-1
이곳은 백제< 百濟 >의 국도< 國都 >를 방어하기 위하여 축조한 외곽산성< 外廓山城 >으로 서쪽의 금성산성< 錦城山城 >과 연결되게 한 것이다. 성둘레는 약 5∼6km이고, 토석혼축< 土石混築 >의 포곡식< 包谷式 > 산성< 山城 >으로 기초부분은 진흙을 깔고, 그 위에 잡석< 雜石 >을 다진 다음 성벽을 축조한 것이며, 내부의 흙을 파서 축성한 관계로 안쪽은 자연스런 호< 壕 >가 되었다. 성내에는 큰 군창터< 軍倉址 >가 세 곳에 있으며 속칭 '각시우물'이란 우물터가 있고, 경룡사터< 驚龍寺址 >가 남아 있다. 백제< 百濟 > 후기< 後期 >의 축성을 대표할 만한 산성으로 조선시대< 朝鮮時代 >까지도 군창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곳은 백제< 百濟 >의 국도< 國都 >를 방어하기 위하여 축조한 외곽산성< 外廓山城 >으로 서쪽의 금성산성< 錦城山城 >과 연결되게 한 것이다. 성둘레는 약 5∼6km이고, 토석혼축< 土石混築 >의 포곡식< 包谷式 > 산성< 山城 >으로 기초부분은 진흙을 깔고, 그 위에 잡석< 雜石 >을 다진 다음 성벽을 축조한 것이며, 내부의 흙을 파서 축성한 관계로 안쪽은 자연스런 호< 壕 >가 되었다. 성내에는 큰 군창터< 軍倉址 >가 세 곳에 있으며 속칭 '각시우물'이란 우물터가 있고, 경룡사터< 驚龍寺址 >가 남아 있다. 백제< 百濟 > 후기< 後期 >의 축성을 대표할 만한 산성으로 조선시대< 朝鮮時代 >까지도 군창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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