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 251-12
이 필경사는 심훈문학의 산실이다.심훈은 1932년(1933년이란 설도 있음)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그의 아버지가 살고 있는 이 곳으로 내려와 한동안 아버지와 한집에 살면서 영원의 미소, 직녀성등을 집필하였다. 1934년에 독립하여 살집을 직접 설계하여 지은 집이 필경사이다. 필경사란 옥호는 1930년에 "그날이 오면"이란 제목으로 시집을 내려다가 일제의 필경사 잡기란 글에서 밝히고 있다. 한가지 일화를 소개하면 집 지을 터를 잡기위하여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는데 그러는 중에 아끼던 상아 빨뿌리를 잃어버렸다. 그것을 찾기 위하여 그때까지 돌아 다닌곳을 다시 되짚어 다니다가 당진군에 빨뿌리를 찾은곳이 지금의 필경사 자리였다한다. 필경사는 한때 교회로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그의 장조카인 고 심재영 옹이 되사서 관리하다가 당진군에 희사하였다. 우리나라 농촌소설의 대표작중 하나인 「상록수」는 1935년 이 집에서 집필된 소설이다. 가옥의 형태는 아담한 건물로서 팔작지붕이며 목조와 가로 18.7평(대지 200평) 지었다.
이 필경사는 심훈문학의 산실이다.심훈은 1932년(1933년이란 설도 있음)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그의 아버지가 살고 있는 이 곳으로 내려와 한동안 아버지와 한집에 살면서 영원의 미소, 직녀성등을 집필하였다. 1934년에 독립하여 살집을 직접 설계하여 지은 집이 필경사이다. 필경사란 옥호는 1930년에 "그날이 오면"이란 제목으로 시집을 내려다가 일제의 필경사 잡기란 글에서 밝히고 있다. 한가지 일화를 소개하면 집 지을 터를 잡기위하여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는데 그러는 중에 아끼던 상아 빨뿌리를 잃어버렸다. 그것을 찾기 위하여 그때까지 돌아 다닌곳을 다시 되짚어 다니다가 당진군에 빨뿌리를 찾은곳이 지금의 필경사 자리였다한다. 필경사는 한때 교회로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그의 장조카인 고 심재영 옹이 되사서 관리하다가 당진군에 희사하였다. 우리나라 농촌소설의 대표작중 하나인 「상록수」는 1935년 이 집에서 집필된 소설이다. 가옥의 형태는 아담한 건물로서 팔작지붕이며 목조와 가로 18.7평(대지 200평)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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