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장산(485.7m) 남쪽 계곡에 있는 사찰이다. 백제 분서왕 3년(300년) 성덕보살이 지금의 보성 벌교인 낙안포에서 금동 관세음보살상을 모셔다 절을 창건하고 관음사라 했다고 전해진다.
고려 공민왕 23년(1374년) 중창. 임진왜란의 피해로 사찰이 불탔으나 1604년(선조 37) 신희, 담원, 담정 등 세 스님이 건물을 복원했다. 관음보살상을 봉안한 원통전은 임란의 피해를 면했다. 1912년 영담화상이 모든 가람을 중수했으나 6.25사변 통에 모두 불탔다. 당시 보물이던 원통전(273호)과 금동 관음보살상(274호)도 안타깝게 불타 버렸다.
영조 5년(1729년) 백매선사가 기록한 목판본인 '옥과현 성덕산 관음사 사적(玉果縣聖德山觀音寺事蹟, 송광사 도서관 인쇄본 소장)에 따르면 원통전의 관음상은 진황후 원홍장이 배에 실어보낸 중국의 불상으로 성덕처녀가 낙안포에서 이곳까지 모셔왔다고 한다. 불상을 옮기는 도중 쉬었던 곳마다 대추정, 연봉정, 삽정, 현정, 흥복정 등 정자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고려 공민왕 23년(1374년) 중창. 임진왜란의 피해로 사찰이 불탔으나 1604년(선조 37) 신희, 담원, 담정 등 세 스님이 건물을 복원했다. 관음보살상을 봉안한 원통전은 임란의 피해를 면했다. 1912년 영담화상이 모든 가람을 중수했으나 6.25사변 통에 모두 불탔다. 당시 보물이던 원통전(273호)과 금동 관음보살상(274호)도 안타깝게 불타 버렸다.
영조 5년(1729년) 백매선사가 기록한 목판본인 '옥과현 성덕산 관음사 사적(玉果縣聖德山觀音寺事蹟, 송광사 도서관 인쇄본 소장)에 따르면 원통전의 관음상은 진황후 원홍장이 배에 실어보낸 중국의 불상으로 성덕처녀가 낙안포에서 이곳까지 모셔왔다고 한다. 불상을 옮기는 도중 쉬었던 곳마다 대추정, 연봉정, 삽정, 현정, 흥복정 등 정자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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