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담양군 담양읍 천변리 167-2
이 석인상은 마을 입구에 세워 둔 장승으로 마을 사람들은 장승이라기 보다는 비석이라고 부르며, 비석이 세워져 있는 곳을 마을에서는 비석거리라고 부르고 있다. 이 비석은 이 마을의 양기수씨 집안에 선대< 先代 >에서부터 모셔 온 비석으로 조상처럼 생각하고 매년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45년전 양기수씨가 충청도로 이사가면서 마을 위친계 계원들에게 제사를 지내 달라고 부탁하고 떠나자, 이 때부터 마을 사람들로 구성된 위친계에서 20년 전까지 추석과 정월보름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비석은 세로 70㎝ 간격으로 마주보고 서 있으며, 45년전에 지붕을 씌워서 웃집을 만들었다가 10여년 전에 시멘트로 지붕을 하고 원통형의 두 개의 기둥으로 받쳤다. 거기에는 양갑동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할아버지 비석< 男 >은 높이 110㎝, 너비 40㎝, 두께 36㎝, 둘레 125㎝이고 얼굴은 65㎝로서 높이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눈은 움푹 패어 들어가 있고, 수염이 역삼각형으로 달려 있으며, 머리에는 원유관< 遠遺冠 >을 쓰고 있다. 손의 자세는 홀< 笏 >을 들고 있는 모습이며, 두꺼운 입술과 넓은 코를 가지고 있으며, 몸통 뒷면에는 별다른 조식이 없다. 할머니 비석< 女 >은 높이 96㎝, 두께 26㎝, 너비 50㎝, 둘레 140m이며 얼굴은 50m이다. 눈은 움푹 패어 들어가 있고, 코와 입은 마모되어 있어 그 흔적만 남아 있다. 머리 모습은 위로 치켜올리듯이 둥그렇게 하고 있다. 두 상< 像 > 모두 한 사람의 작품으로 보이며 긴 관< 冠 >에 비해 얼굴이 짧고 코와 입 등의 표현은 지극히 희화적< 戱畵的 >인 면이 보이고 있다.
이 석인상은 마을 입구에 세워 둔 장승으로 마을 사람들은 장승이라기 보다는 비석이라고 부르며, 비석이 세워져 있는 곳을 마을에서는 비석거리라고 부르고 있다. 이 비석은 이 마을의 양기수씨 집안에 선대< 先代 >에서부터 모셔 온 비석으로 조상처럼 생각하고 매년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45년전 양기수씨가 충청도로 이사가면서 마을 위친계 계원들에게 제사를 지내 달라고 부탁하고 떠나자, 이 때부터 마을 사람들로 구성된 위친계에서 20년 전까지 추석과 정월보름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비석은 세로 70㎝ 간격으로 마주보고 서 있으며, 45년전에 지붕을 씌워서 웃집을 만들었다가 10여년 전에 시멘트로 지붕을 하고 원통형의 두 개의 기둥으로 받쳤다. 거기에는 양갑동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할아버지 비석< 男 >은 높이 110㎝, 너비 40㎝, 두께 36㎝, 둘레 125㎝이고 얼굴은 65㎝로서 높이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눈은 움푹 패어 들어가 있고, 수염이 역삼각형으로 달려 있으며, 머리에는 원유관< 遠遺冠 >을 쓰고 있다. 손의 자세는 홀< 笏 >을 들고 있는 모습이며, 두꺼운 입술과 넓은 코를 가지고 있으며, 몸통 뒷면에는 별다른 조식이 없다. 할머니 비석< 女 >은 높이 96㎝, 두께 26㎝, 너비 50㎝, 둘레 140m이며 얼굴은 50m이다. 눈은 움푹 패어 들어가 있고, 코와 입은 마모되어 있어 그 흔적만 남아 있다. 머리 모습은 위로 치켜올리듯이 둥그렇게 하고 있다. 두 상< 像 > 모두 한 사람의 작품으로 보이며 긴 관< 冠 >에 비해 얼굴이 짧고 코와 입 등의 표현은 지극히 희화적< 戱畵的 >인 면이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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