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청양군 화성면 구재리 146
숙종∼정조때의 문신 채제공<蔡濟恭> 선생의 초상화이다. 비단에 채색하여 그렸는데 5량금관<五梁金冠>을 쓰고 붉은 조복<朝服>을 입었으며 홀<笏>을 쥐고 있는 좌상이다. 얼굴을 약간 옆으로 돌렸는데 공신의 초상화로서는 드물게 성격묘사가 잘 표현되었다. 이 영정은 선생이 64세일 때 도화서 화원(圖畵暑 畵員>인 이명기<李命基>가 그린 것이다. 선생의 영정은 이외에 나주 미천서원(眉泉書院>에 있었는데 잃어버렸고, 부여<扶餘>의 도강영당<道江影堂>에도 한폭이 남아 있다. 채제공(1720∼1799)은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요직을 거쳐 암행어사로 호남을 다녀와 승지<承旨>에 올랐다. 이조<吏曹>·호조<戶曹> 참판<參判>이 되어 1771년 동지정사<冬至正使>로 청에 다녀왔다. 병조판서<兵曹判書>가 되었으나 홍국영<洪國榮>과 뜻이 맞지않아 그만 두었다. 1780년 규장각제학<奎章閣提學>이 되어 서명응<徐命應>과 국조보감<國朝寶鑑>을 찬수하였다. 우·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다. 왕의 은총에 감명하여 충성을 다하려고 모든 정령<政令>의 득실<得失> 군민<軍民>의 고락, 국가의 대계<大計> 등에 대해서 열심히 연구·시정하였다. 천주교인의 탄압에 힘썼으며 서학을 사학<邪學>이라 하여 배척하였으나 천주교인 이가환<李家煥> 사건으로 파직된 적도 있었고 인척중에 천주교도가 많았다는 이유로 관작<官爵>을 박탈 당하였다가 1823년 복관<復官> 되었다. 자는 백규<佰規> 호는 번암<樊岩>으로 평강인<平康人>이다.
숙종∼정조때의 문신 채제공<蔡濟恭> 선생의 초상화이다. 비단에 채색하여 그렸는데 5량금관<五梁金冠>을 쓰고 붉은 조복<朝服>을 입었으며 홀<笏>을 쥐고 있는 좌상이다. 얼굴을 약간 옆으로 돌렸는데 공신의 초상화로서는 드물게 성격묘사가 잘 표현되었다. 이 영정은 선생이 64세일 때 도화서 화원(圖畵暑 畵員>인 이명기<李命基>가 그린 것이다. 선생의 영정은 이외에 나주 미천서원(眉泉書院>에 있었는데 잃어버렸고, 부여<扶餘>의 도강영당<道江影堂>에도 한폭이 남아 있다. 채제공(1720∼1799)은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요직을 거쳐 암행어사로 호남을 다녀와 승지<承旨>에 올랐다. 이조<吏曹>·호조<戶曹> 참판<參判>이 되어 1771년 동지정사<冬至正使>로 청에 다녀왔다. 병조판서<兵曹判書>가 되었으나 홍국영<洪國榮>과 뜻이 맞지않아 그만 두었다. 1780년 규장각제학<奎章閣提學>이 되어 서명응<徐命應>과 국조보감<國朝寶鑑>을 찬수하였다. 우·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다. 왕의 은총에 감명하여 충성을 다하려고 모든 정령<政令>의 득실<得失> 군민<軍民>의 고락, 국가의 대계<大計> 등에 대해서 열심히 연구·시정하였다. 천주교인의 탄압에 힘썼으며 서학을 사학<邪學>이라 하여 배척하였으나 천주교인 이가환<李家煥> 사건으로 파직된 적도 있었고 인척중에 천주교도가 많았다는 이유로 관작<官爵>을 박탈 당하였다가 1823년 복관<復官> 되었다. 자는 백규<佰規> 호는 번암<樊岩>으로 평강인<平康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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