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태안군 태안읍 남문3∼4리 300
조선조<朝鮮朝> 태안현 관아<官牙>의 동헌<東軒> 건물<建物>로 백성<百姓>을 잘 다스리고 사랑한다는 뜻의 목애당<牧愛堂>은 조선조<朝鮮朝> 고종 41년(1904) 오병선 군수가 서문<序文>을 썼다. 목애당<牧愛堂>은 2벌대로 쌓은 장대석 기단<基壇>위에 네모뿔형 주초석<柱礎石>을 놓고 방형<方形> 기둥을 세워 정면 6칸, 측면 3칸으로 평면을 구성 하였다. 주초<柱礎>는 무출목 초익공계로 익공은 주두와 덧물려 외부로 돌출되었고 주초의 급단면은 직선으로 사절되어 있으며 내부는 량붕으로되어 대량의 단부를 받치고 있는데 익공끝을 길게 돌출 시키지 않고 둥글게 마감하여 놓았다. 가구는 전방 토주와 후방 평주 사이에 내 고주를 세운후 퇴량과 대량을 결구한 일고주 오량집이며 홑처마 팔짝 지붕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조선조<朝鮮朝> 태안현 관아<官牙>의 동헌<東軒> 건물<建物>로 백성<百姓>을 잘 다스리고 사랑한다는 뜻의 목애당<牧愛堂>은 조선조<朝鮮朝> 고종 41년(1904) 오병선 군수가 서문<序文>을 썼다. 목애당<牧愛堂>은 2벌대로 쌓은 장대석 기단<基壇>위에 네모뿔형 주초석<柱礎石>을 놓고 방형<方形> 기둥을 세워 정면 6칸, 측면 3칸으로 평면을 구성 하였다. 주초<柱礎>는 무출목 초익공계로 익공은 주두와 덧물려 외부로 돌출되었고 주초의 급단면은 직선으로 사절되어 있으며 내부는 량붕으로되어 대량의 단부를 받치고 있는데 익공끝을 길게 돌출 시키지 않고 둥글게 마감하여 놓았다. 가구는 전방 토주와 후방 평주 사이에 내 고주를 세운후 퇴량과 대량을 결구한 일고주 오량집이며 홑처마 팔짝 지붕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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