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남원시 도통동 392
선원사는 신라 헌강왕 원년(875년)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한 절이라고 전한다. 도선은 각 지방에 사찰을 많이 창건하였다고 전하는데, 남원에 있어서도 만복사<萬福寺> 창건을 비롯하여 용담사<龍潭寺> 7층탑의 건립, 파은사<波銀寺> 등을 창건하는 등 불사에 크게 기여하였다.
선원사는 신라 헌강왕 원년(875년)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한 절이라고 전한다. 도선은 각 지방에 사찰을 많이 창건하였다고 전하는데, 남원에 있어서도 만복사<萬福寺> 창건을 비롯하여 용담사<龍潭寺> 7층탑의 건립, 파은사<波銀寺> 등을 창건하는 등 불사에 크게 기여하였다.
도선국사가 이곳에 선원사를 창건하게 된 것은 남원시의 지세로 보아 교룡산은 객산<客山>이고, 백공산<百工山>은 주산<主山>인데, 그 주산이 매우 약하고 객산의 산세가 강하므로 인공적으로 강한 것을 누르고, 약한 것을 북돋아 줄 필요가 있다고 해서 선원사를 백공산 날줄기의 끝에 세운 것이라 한다. 또 정문현판에 「만행산 선원사<萬行山 禪院寺>」라 쓴 것도 백공산의 모체가 천황봉 아래 만행산 줄기이므로 만행산의 큰 힘으로 교룡산을 눌러 보자는 의도에서 였다고 전한다. 이와같이 선원사는 남원의 번영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믿어왔으므로, 남원거주 인사들은 조선조에도 신도계를 만들어 사찰의 보호와 후원을 하여 왔으며, 역대 부사<府使>들도 각별한 보호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선원사는 정유재란때에 불행하게도 왜군들에 의해 전소되었다. 이때 오직 타지 않고 남은 것은 철불이 있을 뿐이다. 보물 제422호로 지정된 이 철불은 여래좌상으로 높이가 1.2m, 무릎의 폭이 0.9m인 철로 만들어 도금한 것으로서, 현재는 약사전에 안치되어 있다. 현재의 건물들은 1960년대를 전후하여 일학주지<一鶴住持>가 신도계의 도움으로 대웅전과 명부전을 증축하고, 석탑과 탑비 등을 세웠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