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태백시 황지동 467-10
본적사지< 本寂寺址 >는 번적사지< 蕃積寺址 >라고도 불리우며, 태백시의 서쪽 경계를 이루는 함백산< 咸白山 >(해발 1,573m)의 동쪽산기슭에 위치하며, 절골 유원지로 들어가는 입구의 다리를 지나 민가< 民家 >들이 들어서 있는 일대가 절터이다. 절터 남쪽에는 본적산이 있고, 북쪽에는 10m가 되는 바위 절벽이 있으며, 절골 안쪽에는 심적< 深寂 >, 묘적< 妙寂 >, 은적암< 隱寂庵 >터가 있었다고 하며, 절골이라는 명칭도 이처럼 많은 절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仁祖實錄》에 의하면 원래 이곳은 울창한 수목으로 덮여 하늘을 가릴 정도였었다고 하나 광산개발로 인해 많은 수목이 벌채되고 주변에 많은 민가가 들어서면서 농경지로 개간되었다. 또한 현재 절터 뒷쪽(북쪽)으로 절골천이 흐르고 있으나 원래는 석탑 앞(남쪽)으로 흘렀다고 전한다. 이 탑은 이한묵씨(현지 거주)가 30여년전 태백에 들어와서 절터에 밭을 개간하면서 현 집터 뒤에 묻혀있던 것을 옮겼다고 하며, 인근에 집들이 들어서면서 분산되어 하수도 뚜껑, 방 구들장, 주춧돌, 담장 등으로 쓰였으나, 태백시에서 부재< 部材 >를 수습하여 현재 태백석탄박물관< 太白石炭博物館 >에 보관하고 있다. 현재 절터는 대부분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그 앞뒤로는 민가들에 둘러쌓여 있다. 절터에서는 연화문< 蓮花文 > 숫막새기와와 당초문< 唐草文 >·보상화문< 寶相華文 > 등의 암막새기와, 귀면와< 鬼面瓦 >, 선조문< 線條文 >·수지문< 樹枝文 >·격자문< 格子文 > 등의 평와편< 平瓦片 >들이 발견되고 있어 본적사는 나말여초< 羅末麗初 >에는 창건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석탑의 양식을 비교적 잘 계승한 탑으로, 현재 남아있는 부재가 완전하지는 않으나 원형 복원이 가능하며, 태백지역 불교문화의 양상을 살펴보는데 중요한 자료라는 점에서 지정·보존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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