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홍성군 홍성읍 대교1리 124
1905년 일제의 강압에 의해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이 홍주지역에서 1906년(병오년)에 전 이조참판 민종식이 채광묵, 박안기, 이만식, 농민, 유생, 구 관리를 중심으로 홍주성에 쳐들어 갔는데, 당시 홍성군수 이교석과 이주승도 처음에는 의병군에 호응할 기미였다가 일본군 다수가 입성한다는 소식을 듣고 성문을 닫고 입성을 막아 부득이 물러난후 3월 22일에 재차 홍주성에 쳐들어 갔으며, 5월 19일에 홍주성을 함락시켰다. 그후 일본군이 5월 25일부터 홍주성의 의병군을 공격하여 30일부터 본격전이 시작되었으며, 그때 일본군 대포에 의해 조양문이 부서졌고 중과부적으로 의병 수백명이 전사하여 시체가 대교리 일대의 냇가와 남산일대에 흩어져 있었다. 1949년 4월 5일 홍성군수 박주철과 홍성경찰서장 박헌교가 직원들을 인솔하여 현재 의사총이 있는 부근에서 식수를 하다가 의외로 많은 유골을 발견하여 옛노인에게 설명을 듣고, 병오 항일 의병시 전사한 의병군의 유골이 임시 매장된 것으로 판명되어 충남도에 그 사실을 보고하여 도비 300만환을 받아 유골을 모아 이곳에 함장하여 분묘를 조성하여 현재의 모습이 있게 하였다. 매년 5월 30일에 순국 의사에 대한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1905년 일제의 강압에 의해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이 홍주지역에서 1906년(병오년)에 전 이조참판 민종식이 채광묵, 박안기, 이만식, 농민, 유생, 구 관리를 중심으로 홍주성에 쳐들어 갔는데, 당시 홍성군수 이교석과 이주승도 처음에는 의병군에 호응할 기미였다가 일본군 다수가 입성한다는 소식을 듣고 성문을 닫고 입성을 막아 부득이 물러난후 3월 22일에 재차 홍주성에 쳐들어 갔으며, 5월 19일에 홍주성을 함락시켰다. 그후 일본군이 5월 25일부터 홍주성의 의병군을 공격하여 30일부터 본격전이 시작되었으며, 그때 일본군 대포에 의해 조양문이 부서졌고 중과부적으로 의병 수백명이 전사하여 시체가 대교리 일대의 냇가와 남산일대에 흩어져 있었다. 1949년 4월 5일 홍성군수 박주철과 홍성경찰서장 박헌교가 직원들을 인솔하여 현재 의사총이 있는 부근에서 식수를 하다가 의외로 많은 유골을 발견하여 옛노인에게 설명을 듣고, 병오 항일 의병시 전사한 의병군의 유골이 임시 매장된 것으로 판명되어 충남도에 그 사실을 보고하여 도비 300만환을 받아 유골을 모아 이곳에 함장하여 분묘를 조성하여 현재의 모습이 있게 하였다. 매년 5월 30일에 순국 의사에 대한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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