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 산57
수선루는 섬진강 천변의 산기슭 암굴에 세워져 있다. 이 누정은 숙종 12년(1686)에 연안송씨 사형제 진유(眞儒), 명유(明儒), 철유(哲儒), 서유(瑞儒) 등이 건립하였다. 이들 4형제는 우애가 두터웁고 학문이 높았다고 하는데, 이들은 80세가 넘어서도 조석으로 이 정자를 오르내리며 바둑도 두고 시도 읊는 풍도<風度>가 옛날 4호<四晧>의 네 신선이 놀았다는 고사와 흡사하다 하여 목사 최철옹<崔哲翁>이 수선루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다. 그 뒤 고종 21년(1888)에 그의 후손 송석노(宋錫魯)가 중수하였고 1888년 연재 송병선(宋秉璿) 등이 재중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진안군지≫에 송병선이 지은 수선루중수기가 게재되어 있으며 수선루 사변(四邊)에는 ‘延安宋氏睡仙樓洞門’이라는 아홉 자가 새겨져 있다. ‘수선루’라는 명칭은 목사 최계옹(崔啓翁)이 이들 사형제가 갈건포의(葛巾布衣)하며 팔순이 되도록 조석으로 다니며 풍류함이 진나라 말년에 전란을 피하여 협서성의 상산(商山)에 은거한 동원공(東園公), 하황공(夏黃公), 용리선생(用里先生), 기리수(綺里秀등의 기상과 같다하여 명명했다고 전해진다. 정자는 자연암굴을 이용하여 이층으로 세워져 있고 이층 중앙에 ‘睡仙樓’라는 현판이 있고 1층의 문을 통하여 오르게 되어 있다. 이 수선루는 1975년 지방유형문화재 16호로 지정되었다.
수선루는 섬진강 천변의 산기슭 암굴에 세워져 있다. 이 누정은 숙종 12년(1686)에 연안송씨 사형제 진유(眞儒), 명유(明儒), 철유(哲儒), 서유(瑞儒) 등이 건립하였다. 이들 4형제는 우애가 두터웁고 학문이 높았다고 하는데, 이들은 80세가 넘어서도 조석으로 이 정자를 오르내리며 바둑도 두고 시도 읊는 풍도<風度>가 옛날 4호<四晧>의 네 신선이 놀았다는 고사와 흡사하다 하여 목사 최철옹<崔哲翁>이 수선루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다. 그 뒤 고종 21년(1888)에 그의 후손 송석노(宋錫魯)가 중수하였고 1888년 연재 송병선(宋秉璿) 등이 재중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진안군지≫에 송병선이 지은 수선루중수기가 게재되어 있으며 수선루 사변(四邊)에는 ‘延安宋氏睡仙樓洞門’이라는 아홉 자가 새겨져 있다. ‘수선루’라는 명칭은 목사 최계옹(崔啓翁)이 이들 사형제가 갈건포의(葛巾布衣)하며 팔순이 되도록 조석으로 다니며 풍류함이 진나라 말년에 전란을 피하여 협서성의 상산(商山)에 은거한 동원공(東園公), 하황공(夏黃公), 용리선생(用里先生), 기리수(綺里秀등의 기상과 같다하여 명명했다고 전해진다. 정자는 자연암굴을 이용하여 이층으로 세워져 있고 이층 중앙에 ‘睡仙樓’라는 현판이 있고 1층의 문을 통하여 오르게 되어 있다. 이 수선루는 1975년 지방유형문화재 16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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