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터: 기장장, 좌촌(천)장
- Address: 부산 기장군 기장읍 대라리 65번지
기장시장은 기장읍 대라리 65번지에 현대식 건물로 공설시장으로 현대화 되어있다. 『경상도읍지(1831』에 보면, "읍내장은 성문 안에 있으며, 5일, 10일이 장날이고, 좌촌(천)장은 북쪽 20리에 있으며 4일, 9일이 장날"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지금으로 부터 150여년 전부터 있은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언제 어디에 설치되었는 지는 알 수 없다.
원시시대에는 물물교환을 하려면 산신이나 용신 앞에그 물건을 모아 놓고 고사를 지낸 다음에 팔고 사고 할 수 있었고, 고사를 올리지 않은 물건은 절대로 매매를 금지하였다. 그래서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날에 제사를 올리게 되어 장날이 생겼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시골장을 장시(場市) 장문, 향시라고 하여 제각기 특색이 있었고 큰장에는 우(牛)시장도 함께 있었다.
이러한 장날에는 새옷을 갈아입고 나들이 하는 즐거운 날이 되고, 생산품을 팔아서 필수품을 구입하게 되고, 장날을 정하여 인근끼리 만나기도 하고, 삼지돈, 줌지돈을 만져가며 사돈을 만나고, 아는 사람을 만나서 안부를 묻고 안부를 전하기도 하였으며, 나뭇짐을 팔아서 장모에게 선지국을 대접하기도 하였다. 기장 장날과 자천 장날은 그 유명한 기미년 3.1독립만세 사건을 일으키기도 하였던 곳이다.
기장시장은 1905년경에 동부리 에 있는 기장초등학교 정문앞에 약 500평 정도의 공터와 서부리의 수각다리 까지의 골목이 장터가 되었고, 그후 51년 뒤에 서부리 정미소터에 가축시장이 개설되었다. 1960년경 대라리로 옮겨오면서 가축시장은 없어졌다. 이곳도 협소하여 1964년 대라리 65번지 일대 1,206평에 이전하여 전포를 설치하여 상설시장이 되었다. 이 상설시장은 난잡하게 가설된 시장으로 1985년 현대식으로 건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시장의 건축과정에서 많은 상인들은 그 위치와 규모, 경비문제로 분규가 발생하였다. 그리하여 청강리 청강가에 상가 시장을 건립하여 기장시장은 양분되었다.
좌천시장은 한때는 울산, 언양, 동래시장과 맞먹었을 정도로 성시(盛市)를 이루었다. 주변의 생선과 해산물, 정관, 장안 등지의 농산물의 집산지였다. 우시장으로서는 전국에서 이름을 떨쳤다. 광복을 전후로 각 지역에서 모여들어 장날(4일, 9일)이면 약 2,000명의 인파가 붐비었다. 그런데 최근에 상설시장이 생기고 상가가 줄지어 늘어나면서부터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기장시장은 옛부터 "와닥딱딱 기장장, 망건 쓰자 파장장"이라 하여 새벽장이다. 기장칼치 기장미역은 전국에 알려진 말로서 모두가 이 기장시장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승용차]
●해운대 - 신시가지 - 송정 - 기장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기장시장 방면으로 진행, 약 30분 소요
●해운대 - 달맞이고개 - 송정 - 기장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기장시장 방면으로 진행, 약 30분 소요
[대중교통]
●수영교차로에서
63-1번, 181번 시내버스 이용, 기장시장 하차
●해운대역에서
63-1번 , 142번, 180번, 181번 시내버스 이용, 기장시장 하차
●서면 태화백화점에서
142번 시내버스 이용, 기장시장 하차
●동부 시외버스터미널에서
188번 시내버스 이용, 기장시장 하차
- Address: 부산 기장군 기장읍 대라리 65번지
기장시장은 기장읍 대라리 65번지에 현대식 건물로 공설시장으로 현대화 되어있다. 『경상도읍지(1831』에 보면, "읍내장은 성문 안에 있으며, 5일, 10일이 장날이고, 좌촌(천)장은 북쪽 20리에 있으며 4일, 9일이 장날"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지금으로 부터 150여년 전부터 있은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언제 어디에 설치되었는 지는 알 수 없다.
원시시대에는 물물교환을 하려면 산신이나 용신 앞에그 물건을 모아 놓고 고사를 지낸 다음에 팔고 사고 할 수 있었고, 고사를 올리지 않은 물건은 절대로 매매를 금지하였다. 그래서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날에 제사를 올리게 되어 장날이 생겼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시골장을 장시(場市) 장문, 향시라고 하여 제각기 특색이 있었고 큰장에는 우(牛)시장도 함께 있었다.
이러한 장날에는 새옷을 갈아입고 나들이 하는 즐거운 날이 되고, 생산품을 팔아서 필수품을 구입하게 되고, 장날을 정하여 인근끼리 만나기도 하고, 삼지돈, 줌지돈을 만져가며 사돈을 만나고, 아는 사람을 만나서 안부를 묻고 안부를 전하기도 하였으며, 나뭇짐을 팔아서 장모에게 선지국을 대접하기도 하였다. 기장 장날과 자천 장날은 그 유명한 기미년 3.1독립만세 사건을 일으키기도 하였던 곳이다.
기장시장은 1905년경에 동부리 에 있는 기장초등학교 정문앞에 약 500평 정도의 공터와 서부리의 수각다리 까지의 골목이 장터가 되었고, 그후 51년 뒤에 서부리 정미소터에 가축시장이 개설되었다. 1960년경 대라리로 옮겨오면서 가축시장은 없어졌다. 이곳도 협소하여 1964년 대라리 65번지 일대 1,206평에 이전하여 전포를 설치하여 상설시장이 되었다. 이 상설시장은 난잡하게 가설된 시장으로 1985년 현대식으로 건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시장의 건축과정에서 많은 상인들은 그 위치와 규모, 경비문제로 분규가 발생하였다. 그리하여 청강리 청강가에 상가 시장을 건립하여 기장시장은 양분되었다.
좌천시장은 한때는 울산, 언양, 동래시장과 맞먹었을 정도로 성시(盛市)를 이루었다. 주변의 생선과 해산물, 정관, 장안 등지의 농산물의 집산지였다. 우시장으로서는 전국에서 이름을 떨쳤다. 광복을 전후로 각 지역에서 모여들어 장날(4일, 9일)이면 약 2,000명의 인파가 붐비었다. 그런데 최근에 상설시장이 생기고 상가가 줄지어 늘어나면서부터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기장시장은 옛부터 "와닥딱딱 기장장, 망건 쓰자 파장장"이라 하여 새벽장이다. 기장칼치 기장미역은 전국에 알려진 말로서 모두가 이 기장시장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승용차]
●해운대 - 신시가지 - 송정 - 기장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기장시장 방면으로 진행, 약 30분 소요
●해운대 - 달맞이고개 - 송정 - 기장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기장시장 방면으로 진행, 약 30분 소요
[대중교통]
●수영교차로에서
63-1번, 181번 시내버스 이용, 기장시장 하차
●해운대역에서
63-1번 , 142번, 180번, 181번 시내버스 이용, 기장시장 하차
●서면 태화백화점에서
142번 시내버스 이용, 기장시장 하차
●동부 시외버스터미널에서
188번 시내버스 이용, 기장시장 하차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