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 신림동 산56-1번지 서울대학교규장각
삽칠사찬고금통요는 지질이 저지로 되어 있으며 그 크기가 세로 25.6, 가로 18.7cm 정도의 책으로 호정방(원< 元 >)의 찬이며, 조선 태종 3년(1403)에 주조한 계미동활자를 사용하여 태종 연간(1412경)에 간행한 것으로 추정된는 책입니다. 이 묵서와 소장인으로 미루어 보면, 본시 등전 장서이었던 것이 해방 직후 삼불암 김원룡 교수의 손으로 들어와 분책되어 2곳으로 전래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책 인출에 사용한 계미자는 태종 3년(1403) 2월 19일에 착수하여 몇 달이 걸려 수 십만 개를 주성 해 낸 조선 최초의 동활자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우선 크게 부각됨은 물론, 또한 고려·조선의 주자술과 조판술의 발달사 연구에 있어서도 매우 귀중한 자료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태종 10년(1410)부터는 주자소로 하여금 책을 찍어서 널리 국내에 판매 보급케 하였으니, 문화사적 견지에서도 그 의의가 지대하게 평가되고 있습니다.
삽칠사찬고금통요는 지질이 저지로 되어 있으며 그 크기가 세로 25.6, 가로 18.7cm 정도의 책으로 호정방(원< 元 >)의 찬이며, 조선 태종 3년(1403)에 주조한 계미동활자를 사용하여 태종 연간(1412경)에 간행한 것으로 추정된는 책입니다. 이 묵서와 소장인으로 미루어 보면, 본시 등전 장서이었던 것이 해방 직후 삼불암 김원룡 교수의 손으로 들어와 분책되어 2곳으로 전래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책 인출에 사용한 계미자는 태종 3년(1403) 2월 19일에 착수하여 몇 달이 걸려 수 십만 개를 주성 해 낸 조선 최초의 동활자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우선 크게 부각됨은 물론, 또한 고려·조선의 주자술과 조판술의 발달사 연구에 있어서도 매우 귀중한 자료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태종 10년(1410)부터는 주자소로 하여금 책을 찍어서 널리 국내에 판매 보급케 하였으니, 문화사적 견지에서도 그 의의가 지대하게 평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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