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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촌동고인돌 - 평촌동 길마루에 소재한 평촌동고인돌

by 넥스루비 2007. 8. 7.

대전 서구 평촌동

흑석리에서 벌곡 방향으로 계속가면 길헌초등학교가 위치한 평촌동 고개가 나온다. 이 고개마루 근처에 옛부터 도선암 이라 부르던 바위와 고개를 내려가 길가 야산기슭에 칠성바위라 불리는 바위가 있다. 이 바위들은 관저동 충남방적공장내에 있는 내동리고인돌과 유성구 교촌동에 있는 칠성당이고인돌과 같은 남방식고인돌이다.
<도선바위 고인돌>
평촌동 진벌의 마을회관앞에 위치한다. 본래는 회관 옆의 길 건너편 부동산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1987년의 도로공사로 현 위치에 옮겨졌다 한다. 이 고인돌은 이미 1962년 학계에 간략히 소개된 바(이은창, 1962) 있다. 마을에서는 '도선바위(道詵岩)' 라 부르는데, 신라말의 스님인 도선국사(道詵國師)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한다. 즉, 옛날 길지를 찾아 전국을 떠돌던 도선스님이 이곳에 이르러 주변 형국을 살펴보고 지형이 너무도 좋아 이 바위에 올라 신명나게 춤을 추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길헌초등학교 뒷산은 소가 누웠다는 와우(臥牛) 형국이고, 회관 옆으로 멀리 있는 청학봉이란 산은 소를 매두는 말뚝붕, 회관 앞은 '옹간(외양간)' 형국이라 한다. 또한 예로부터 '연동진남 가활만인(連東鎭南 可活萬人)' 이라하여 연산 동쪽 진잠 남쪽에 만 명의 사람이 피난해 살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마을 주민들은 바로 이 부근이 그 장소이고, 도선바위 밑에 만명의 사람이 3년 동안 먹을 식량이 있다는 것이다.
바위는 290 * 108 * 36cm의 크기로 윗면이 매우 평평하며, 이곳으로 옮길 때 두조각으로 갈라졌다. 주민들에 의하면 반정도가 땅에 묻혔다. 측면에는 '길평(吉平)' 이란 글이 새겨져 있고, 땅속에 묻힌 부분에도 같은 글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다고 한다. 옮길 당시 바위 밑은 바로 생땅이었고 다른 돌이나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칠성바위 고인돌>
평촌동 고개에서 벌곡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다 오른쪽 야트막한 구릉에 위치한다. 도로와 접해 개간된 밭에 있는 고인돌은 같은 등고선상에 횡으로 놓여져 있다. 5기로 보이지만 이 가운데 두기는 다른 고인돌에 겹쳐진 상태로 뒤에 경작하며 옮겨진 듯하다. 북쪽의 고인돌부터 번호를 매긴다면 먼저 1호는 160 * 110 * 50cm, 2호 140 * 90 * 20cm, 3호 250 * 160 * ?, 4호 290 * 120 * 50cm, 5호 120 * 70 * 40cm, 6호 210 * 80 * 45cm, 7호 240 * 170 * 60cm의 크기이다. 이 가운데 2호와 5호는 각각 1호, 4호에 기대어 포개진 상태이며, 3호는 돌의 윗면만 보인 채 아래는 모두 묻혔다. 1호와 3호는 370cm, 3호와 4호는 400cm, 4호와 6호는 520cm, 6호와 7호는 360cm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3호와 4호 고인돌 주변에는 크고 작은 여러 개의 돌덩이들이 있다. 고인돌의 긴 방향은 남북을 향하며, 배열된 상태가 마치 북두칠성을 닮았기에 마을에서는 '칠성바위' 라 부른다. 평촌동 칠성바위 고인돌군과 도선바위 고인돌은 서로 가까운 위치에 있고, 크기도 비슷하여 같은 시기의 문화권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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