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은 백제시조인 온조왕이 하남위례성에 도읍을 정했으나 말갈족의 침입이 있어 청량산을 중심으로 고지대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요새지인 이곳으로 온조 14(BC5)년 천도하였으며 신라 영역이 된 후로 문무왕 12년(AD672)에 토성으로 축성하고 주장성 또는 일장성이라 하였다.
조선조에는 광해군 13년에 처음으로 남한산성을 경도보장지로 정하고 후금의 침입을 막고자 토성을 석성으로 개축하기 시작한 것을 '이괄의 난'을 치르고 후금의 위협이 증가하므로 인조 2년 수어사 이서에게 명하여 수축케 하였다.
축성에는 벽암대사도 도총섭에 임명되어 팔도승군을 동원하여 축성공역에 임하였으며 2년만인 인조 4년에 준공되었다.
그후 숙종때 외성을 축조하는 등 성의 시설물이나 성내의 영조물 조성은 조선말 순조때까지 계속되었다.
성의 전체적인 형태는 성곽의 주변부가 높고 험악한 데 비하여 성의 중심부가 낮고 평평한 평지를 이루어 수비가 용이하고 성내의 주거가 평안하여 산성으로 좋은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성은 본성과 외성으로 구성되었으며, 둘레는 9.05 Km이고 성부의 높이는 3m-7.5m이고 4장대(서장대만 존재), 4문, 5옹성, 16암문, 2봉화대가 있고, 성내에는 군포 125, 지당 45, 정호 80, 수대 8개소가 있었다.
유사시에는 임금이 이어할수 있는 행궁을 비롯하여 종묘, 사직, 관아, 재옥, 객사, 종각등이 있었으나 현재 남이있는 것은 없다.
사찰은 축성전부터 망월사, 옥정사가 있었으나, 천주사, 국청사, 개원사, 남단사, 한흥사, 장경사, 동림사를 지어 모두 9개 사찰이 있었으며, 현재는 장경사, 망월사, 개원사, 국청사를 복원하여 4개 사찰이 있다.
성내의 지정된 문화재로는 성곽이 국가사적 57호로 지정되었고, 경기도 지방 유형문화재로 수어장대, 청량당, 숭열전, 현절사, 침괘정, 연무관, 문화재자료로 지수당, 장경사, 기념물로는 망월사지, 개원사지,행궁지 등이 있다.
이 성은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45일간 항전하던 곳이며, 비록 스스로 항복하였으나 외침에 의하여 정복 당한적이 없는 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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