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천안시 북면 은지리 44
북면 은지리 은석산 아래에 있다. 암행어사로 많은 일화를 남겼던 박문수공<朴文秀公>의 재실<齋室>로 1932년에 건축하여 옛모습을 찾을 수 없다. 안채는 팔작<八作>지붕에 목조로 ㄱ자 집이며 7칸이 있고 사랑채는 5칸으로 一자집이다. 재실내에는 박문수공의 영정과 그가 사용하던 유품이 보관되어 있으며, 특히 박문수공의 손<孫>인 박영보가 평안도 벽동군의 어사로 나갔을 때 쓴 수부정기와 박문수 일대기 등의 많은 전적<典籍>이 보관되어 있다. '90년에 원래에 있었던 재실<齋室>자리에 새로 재실을 신축하였다. 주) 재실<齋室>은(능에 딸린 부속건물, 능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에 크게 지은 집으로 제관<祭官>의 휴계, 제기<祭器>를 간수하였고, 참봉의 거처와 수복<守僕>의 거처로 쓰인 곳이다.)
북면 은지리 은석산 아래에 있다. 암행어사로 많은 일화를 남겼던 박문수공<朴文秀公>의 재실<齋室>로 1932년에 건축하여 옛모습을 찾을 수 없다. 안채는 팔작<八作>지붕에 목조로 ㄱ자 집이며 7칸이 있고 사랑채는 5칸으로 一자집이다. 재실내에는 박문수공의 영정과 그가 사용하던 유품이 보관되어 있으며, 특히 박문수공의 손<孫>인 박영보가 평안도 벽동군의 어사로 나갔을 때 쓴 수부정기와 박문수 일대기 등의 많은 전적<典籍>이 보관되어 있다. '90년에 원래에 있었던 재실<齋室>자리에 새로 재실을 신축하였다. 주) 재실<齋室>은(능에 딸린 부속건물, 능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에 크게 지은 집으로 제관<祭官>의 휴계, 제기<祭器>를 간수하였고, 참봉의 거처와 수복<守僕>의 거처로 쓰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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