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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신도비 - 비신과 대석 개석 모두 양질의 화강암으로 조성되어...

by 넥스루비 2007. 8. 7.

충북 청원군 옥산면 신촌리 9-8

박훈 신도비<朴薰 神道碑>는 그의 묘소 입구 도로변에 세워져 있는 조선시대 일반형의 큰 석비<石碑>이다. 박훈(1484∼1540)은 조선전기의 유학자로서 홍문관<弘文館> 교리<校理> 증영<增榮>의 아들이다. 연산군<燕山君> 10년(1504)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후 여러 벼슬을 거치다가 중종<中宗> 14년(1519)에 현량과<賢良科>에 급제하고 승정원<承政院> 동부승지<同副承旨> 등을 지냈는데 기묘사화<己卯士禍, 1519>때 화를 당하여 17년간 유배생활을 하다가 중종 31년(1536)에 풀리어 그의 외가<外家>가 있는 곳에서 말년을 지냈다. 신도비는 영조 24년(1748)에 박필주<朴弼周>가 찬<撰>하고 윤득화<尹得和>가 서<書>하고 유척기<兪拓基>가 제전<題篆>하여 세웠는데 후면에는 성운<成運>이 찬한 묘문<墓文>을 새겼다. 1957년에 정면 1칸, 측면 1칸 겹처마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으로 된 비각을 건립하였다. 비의 형태는 방형의 대석과 팔작지붕의 개석<蓋石>을 갖춘 일반형으로 개석에는 기와지붕의 세부양식을 정교하게 조각하였으며, 비신<碑身>과 대석<臺石> 개석 모두 양질의 화강암으로 조성되어 보존상태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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