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원군 강내면 월탄리 291-5
박숭원<朴崇元, 1532∼1592>은 조선 선조<宣祖>때의 공신으로 자는 상화<尙和>, 시호는 충정<忠靖>,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명종<明宗> 19년(1564)에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좌랑을 거쳐 동부승지, 대사헌, 충청도 관찰사, 도승지를 역임하다가 선조<宣祖> 25년(1592)에 한성부 판윤<漢城府 判尹>이 되었다. 이때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왕을 모시고 의주<義州>의 행재소<行在所>에 호종<扈從>하다가 병사<病死>하였다. 이때의 공로가 인정되어 선조 37년(1604)에 비록 사후<死後>이기는 하지만 호성공신 2등<扈聖功臣 二等>에 책록되었다. 호성공신이란 충근정량갈성효절협제호성공신<忠勤貞亮竭誠孝節協第扈聖功臣>의 약칭으로 선조가 의주까지 몽진할 때 시종<侍從>하는데 특히 공이 컸던 사람에게 준 훈호<勳號>인데 이항복<李恒福> 등 모두 86명으로 1등 2명, 2등 31명, 3등 53명이다. 이 녹권<錄券>은 2등 공신인 박숭원에게 내려진 것으로 필사<筆寫>된 뒤에 「시명지보<施明之寶>」의 도장이 찍혀 있다. 내용은 첫머리에 박숭원의 공을 찬양하는 교서<敎書>, 다음에 호성공신 책록의 경과와 공신에 대한 포상<褒賞>의 내용이 있고, 공신의 명단이 있다. 역사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며 보존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박숭원<朴崇元, 1532∼1592>은 조선 선조<宣祖>때의 공신으로 자는 상화<尙和>, 시호는 충정<忠靖>,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명종<明宗> 19년(1564)에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좌랑을 거쳐 동부승지, 대사헌, 충청도 관찰사, 도승지를 역임하다가 선조<宣祖> 25년(1592)에 한성부 판윤<漢城府 判尹>이 되었다. 이때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왕을 모시고 의주<義州>의 행재소<行在所>에 호종<扈從>하다가 병사<病死>하였다. 이때의 공로가 인정되어 선조 37년(1604)에 비록 사후<死後>이기는 하지만 호성공신 2등<扈聖功臣 二等>에 책록되었다. 호성공신이란 충근정량갈성효절협제호성공신<忠勤貞亮竭誠孝節協第扈聖功臣>의 약칭으로 선조가 의주까지 몽진할 때 시종<侍從>하는데 특히 공이 컸던 사람에게 준 훈호<勳號>인데 이항복<李恒福> 등 모두 86명으로 1등 2명, 2등 31명, 3등 53명이다. 이 녹권<錄券>은 2등 공신인 박숭원에게 내려진 것으로 필사<筆寫>된 뒤에 「시명지보<施明之寶>」의 도장이 찍혀 있다. 내용은 첫머리에 박숭원의 공을 찬양하는 교서<敎書>, 다음에 호성공신 책록의 경과와 공신에 대한 포상<褒賞>의 내용이 있고, 공신의 명단이 있다. 역사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며 보존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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